이 별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꽃은 나에게 무슨 얼굴로 핀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다. 어쩌자고 우리는 이렇게 만난 것일까. 그리고 어쩌자고 이렇게 헤어질 뻔했다는 말인가.
비로소 나는 한 사람을 가졌는데, 한 마음을 가졌는데 그를 나로 인해 놓칠 뻔 했다. 그 생각을 하게 되면 숨이 멎을 것만 같다.
물 속에 빠지고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면서도 나를 향해 몸을 던지던 오빠를 생각하면 나는 그대로 죽는 것보다 오빠가 다칠까봐 그게 너무 무서웠다.
나야, 어떻게 왔다 가건 누구도 기억치 않을 보잘것 없는 아이지만 오빠는, 오빠는.....아.....
잠든 오빠는 아름답다.
나는 비로소 이사람을 온전히 본 것 같다.
땀에 젖어 몇 오리 붙은 머리카락을 나는 쓸어준다.
오빠의 잠든 눈썹이 가끔씩 괴로운지 떨린다. 이따금 신음소리도 낸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 오빠는 한고비를 넘겼다지만 깨어나서 나를 부르기 전에는, 그가 내 얼굴을 눈망울에 담아주기 전에는 나는 살지 못할 것 같다.
그가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얼굴이었던가. 시리도록 흰 이맛전, 콧마루를 흘러서 입가에 떨어지는 부드러운 선을 본다.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미동도 없다. 땀이 배인 얼굴에 가끔씩 경련이 일어난다.
풀어진 셔츠 속으로 그의 가슴이 부드럽게 오르내린다.
나는 가슴에 얼굴을 기대었다. 돌아와 주어서 고마와. 내게로 다시 돌아와주어서 정말 고마와...
그의 손, 나는 가만히 그의 손에 내 손을 넣어본다. 작은 흰 기둥 사이로 내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의식이 없는 오빠가 갑자기 내 손을 담은 채 그대로 오무려 버렸다.
약하지만 부드러운 주먹, 나는 빼지 않았다.
아니 손가락을 그의 손가락에 얽어서 더 단단히 꼭 쥐었다.
오빠, 내 손을 놓치마. 다른 곳에 가면 안돼. 나를 보내서도 안돼. 다른 사람을 잡아서도 안돼. 내가 어리면 조금만 기다려 줘. 내가 부족하면 오빠가 조금만 채워줘.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할께. 내가 부지런히 걸어갈께.
한 젊은 남자가 누워있다. 부시도록 아름다운 영혼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온 세상의 작은 풀잎들아, 잠깐만 나를 잊어다오.
온 세상의 바람들아 잠깐만 나를 돌아보지 말아다오
그는 여기에 숨을 쉬고 있으니, 그가 잠든 곳에 달려와 깨우지 말거라.
이 사람은 잠시 내게서 쉬는 별, 하늘이 잠깐 보여준 사랑의 사람, 내게 허락하신 단 한사람. 그가 내게서 쉬니 밤이여 네 곤한 날개로 이 사람의 잠을 조금만 늘려다오.
내가 저지른 죄가 그에게 닿지 않게. 그가 깨어 나를 비웃지 않게....
내가 그에게 깃들도록, 온전히 그의 안에 닿아 내 마음이 그에게로 흘러 적실때까지, 이 아프고 괴로운 마음이 잠깐이라도 안식을 얻을 때까지.
-그리고 한동안 영의 일기는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을지 짐작이 갔다.
급작스레 달라진, 아니 비로소 터져나오는 감정으로 인해 혼란스럽고 당혹했을 둘의 모습이 선연했다.
고작해야 영이는 어린 소녀 아니었던가.
창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막연했던 서로에 대한 감정이나 뿌리없는 외로움은 비로소 상대를 향해 뻗기 시작했고 그리고는 그들 스스로도 어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기의 몫을 알아차린 사랑이 어찌 뒤를 돌아다 볼 수가 있었을 것이랴.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들은 같이 사는 가족이었고, 어떤 오누이보다 질긴 정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들이 사랑을 드러내고 키우기에는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 뒤의 며칠은 간단한 메모처럼 이어졌다.
서울에 돌아왔다..... 서점에 갔다.....오빠와 아버지가 오래 말씀을 나누었다....그사람이 찾아왔다.....외삼촌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무어라 쓰려다가 멈추고 만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나 싯귀가 등장했다가 미쳐 이어지지 못하고 끝나곤 했다.
그 여름 영은 누구보다 행복했을 것이나, 누구보다 외로왔다.
서울로 돌아온 뒤 그들의 대화는 일기장에 남은 것이 별로 없다.
창은 바쁘게 돌아다녔고, 영은 그런 모습을 묵묵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창이 입대하는 날이 다가왔다.
오빠는 알까.
내 마음을 알까.
내가 오빠에게 한 일을 오빠는 기억하고 있을까. 오빠가 당한 상처가 내 가슴에 어떤 멍으로 건너왔는지 오빠는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