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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완결소설- 아이러브스쿨

3.

by 소금눈물 2011. 11. 9.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정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이러저러한 인사 끝에 예의 그 원고 얘기였다.
뭐라던가 지금도 생소한 생긴지 얼마 안되나 그 미래는 자못 양양한 문예지에 군의 작품을 올릴까 한다는 것이었다.

정교수가 어떤 연유로 그 책에 관여를 하는지 어째서 교양시간에 한 학기 이름 올린 게 전부인 나 같은 졸업생에게 몸소 전화를 하셔서 이르는 지는 모르지만 애숙의 말이 먼저 떠올라 영 개운치가 않았다.
자세한 사연이야 나중에 만나서 하자고 끊기는 했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밥벌이가 하루가 급하긴 했지만 어떤 곳인지 이름을 떠벌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이름이 떠벌려나 지려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교수의 평판이 험악한 것은 내가 학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교양국어였는데 오랜 시간 강사생활 끝에 적잖이 돈을 밀어 넣어 전임자리를 얻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소문이야 소문으로 치고 강의가 좋았으면 흐지부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수업시간 마다 툭하면 입에 담기 민망한 음담패설이 난무해서 여학생들이 항의하다 교실을 박차고 나간 적도 있었다.
대자보에 이름을 올리고 해당학생들에게 사과를 하고 한동안 어수선하게 일을 치르고도 별로 고쳐진 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그냥 원고 얘기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골치 아프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얼굴 붉히는 일없이 없던 일로 돌릴 수 있을지 참으로 난감했다.
나중에라도 혹시 돈을 내고 원고가 실렸다고 말을 들으면 그런 망신도 없을 것이었다.
투철한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엄마는 아니어도 모난 입에 오르내리는 딸의 몰골을 앉아서 보고 있지도 않을 터였고.

나비 날개 같은 것이 스친다 싶더니 한 두 잎 보이다가 금방 눈앞에 자욱한 눈발이 되어버렸다.
줄지어 선 가로수가 한 발씩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시야가 감감해졌다.

약속시간을 어줍잖게 잡았다.
겨울 저녁 일곱 시면 밥 먹기도 무엇하고 술 먹기도 이르다.
빈속에 나온 터라 속이 허전했다.
툭 터놓고 편한 사이도 아니니 인섭이 말대로 차 한잔하고 금새 올 지도 몰라 저녁을 건넜다.
이십 여분을 추위에 떨면서 걸으니 더 허한 것 같았다.

약속장소로 정한 커피샵 리오는 모퉁이 돌자마자 바로였다.
붉은 글씨체가 하도 요란해서 눈에는 금방 띄었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 보니 정작 가게는 조그마했다.

문을 여는데 땡그랑 하는 벨 소리가 경쾌하게 어깨에 울렸다.
테이블이라야 여 남은 개 다닥다닥 들여놓은 손바닥만한 커피집이었다.
레드를 테마로 삼은 듯 테이블도 의자등받이도 붉은 색이었고 구석구석 작은 소품들이 붉은 것들이 많았다. 한쪽에 세워둔 부분 조명등의 노란 갓이 더 눈에 띄게 화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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