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2/2010 08:4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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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죽음이 이렇게 예고하고 찾아왔다. 예고된 죽음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아주 태연하게 그것을 맞아들였다. 두려움에 몸부림을 치거나 절망감으로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들은 인류의 숙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죽음에 너무나 친숙해 있었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건 정작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특정한 방식이었다. '모르스 레펜티나( mors repentina)', 즉 등 뒤에서 갑자기 덮쳐오는 죽음이야말로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갑작스런 죽음은 회개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물론 영생을 얻을 수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모르스 레펜티나를 '끔찍하고 비열한' 죽음이라 불렀고, 기도를 할 때마다 신에게 자신이 죽음의 시간을 미리 알게 해달라고 빌었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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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토두스(Homo Todus 잠자는 죽음).
베리공작의 기도서 중 <십자가 발견>.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의 일화. 에코가 중세 연구자가 된 것도 이 책을 읽고 난 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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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낭(rvenant).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우르소처럼 살아움직이는 시체.
중세인들에게 르브낭은 사실(史實)이자 (事實)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르브낭에 대해별로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 고대인들이 르브낭에 대해 가졌던 공포감이나 혐오감에 비하면 이는 퍽 대조적이다.가령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에서 예수의 이적(異跡)에 대해 전해들은 헤롯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뭐, 죽은 자를 깨웠다고? 짐은 그에게 그것을 금지하노라. 죽은 자가 돌아오다니 얼마나 끔찍한가!" 하지만 중세인들은 르브낭에 대해 별로 거부감이 없었던 모양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 르브낭이 신의 권능의 증거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중세 말에 이르면 사정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p.37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죽음의 의미. 침착한 과정, 때로는 기쁨이기조차 했던 죽음을 맞는 제의가 중세를 넘어가면서 '심판'의 과정을 이입하면서 불안과 공포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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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에스에 따르면, 중세 초기만 하더라도 죄인들은 따로 벌을 받지 않았다 한다. 단지 남들이 부활을 하는 날 함께 깨어나지 못할 뿐이었다. 존재의 상실, 그들에게는 바로 이게 가장 큰 형벌이었다. 따로 지옥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림에 지옥의 장면이 등장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었다. 죄인들은 동료 인간들과 신의 기억 속에서 그냥 사라질 뿐이다. 그래서 초기의 작품에선 지옥은 물론이고 아예 죄인의 모습까지도 생략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오텅의 작품에는 지옥의 장면이 보이지 않고, 심판받는 자를 안고 가는 저 악마들의 모습 속에 살짝 암시만 되어 있을 뿐이다.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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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인들의 소망은 아주 소박했다. 그들은 에테르 같은 영혼의 상태가 아니라, 그냥 지금 이대로 육체를 가지고 영원히 살고 싶어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 마침내 그 소망이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또 그날이 '곧' 오리라고, 그리하여 자기들의 생전에 오리라 생각했다. 설사 그날을 보지 못하고 죽어도, 정말로 '잠깐만' 잠을 자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다시 오시겠다던 그리스도는 죽은 지 천여 년이 흐르도록 오시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회로서는 '부활'과 '심판'의 날을 마냥 뒤로 미룰 수만은 없었다. '부활'과 '심판'이 아득한 훗날의 일이 될수록, 그 효과는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세 후기로 갈수록 교회는 영육 이원론을 내세우면서, 어느 세월이 이루어질지 모르는 '몸'의 부활보다는 사후에 즉시 있을 '영혼'의 구원을 강조하게 된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몸'의 부활에 관한 설교를 들은 기억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아마 별로 없을 거다.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 교리에는 아직까지 몸이 부활하리라는 이 소박한 믿음이 '공식적으로' 남아 있다. 그리하여 지금도 기독교인들은 매주 한 번씩 이렇게 고백을 한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p.80
이런 익살섞인 야유에 밑줄을 그으며 웃다니 이러다 갈수록 배교자가 되겠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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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마리아와 성인을 신성시하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에 어긋난다. 왜냐면 이들은 엄연히 인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이들을 신성시한 데에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 다신교를 믿는 미개한 유럽인들의 머리로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측으로서는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이들이 믿던 모신(母神 Muttergot)을 '마리아'로, 그리고 나머지 잡신들은 '성인'으로 둔갑시키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에 들어온 이 미개종교의 흔적이 어느새 정통 기독교의 입장으로 굳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p. 93-94
지은이 뿐 아니고, 다른 나라 사람이 쓴 중세연구사를 봐도 이 견해는 같이한다. 흠...민중을 흡수하기 위해 토착종교를 일정부분 끌어들여 합체한다..
이것은 기독교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보이는, 신생종교인 불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도 보이는 모습이다. 전략적 흡수->'이게 정통교리다' . 정통이 뭔지 이단이 뭔지 참...
이 장(場)에서 열렬한 가톨릭교도였던 엘 그레코의 프로파간다 미술작품들을 생각할 것.
진중권.<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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