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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펼쳐진 일기장

기생충 - 우울한 지하생활자들의 햇살

by 소금눈물 2020. 4. 26.


'' 기생충을 이제야 봤다.

온 세계가 왜 그렇게 극찬을 했는지 시작하자마자 알았다.

한 장면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은유와 상징들이 블랙유머로 넘쳤다.

'선을 넘지 않게' 딱 그 자리에 멈춰주는, 과하지 않은 유머, 좁은 산동네 골목길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오물들이 낮은 집의 사람들을 집어삼키듯 쏟아져 내리는 날카롭고 묵직한 슬픔의 감동.

 

 

집 한 채를 통해 사회 계층간의 구성과 이동, 그 잠깐의 이동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이 사회의 신분들을 표현 한 것이 기가 막힐 정도로 섬세하고 단단했다.

 

기생충의 상징의 의미는 이미  넘치도록 많으니 구태여 나 같은 허릅숭이가 한마디 더 할 것도 없겠으나, 내가 가슴 저리게 딱 꽂힌 장면은 이 것이었다.

와이파이도둑질을 해서 겨우 카톡을 연결하는, 취객들의 오줌세례와 토사물을 식탁에서 봐야 하고 곱등이와 함께 사는 지하생활자인 기우가 박사장의 집으로 처음 오던 날, 정돈되지 않는 산동네 울퉁불퉁한 계단 아래 지하방에서, 계단조차 없는 매끄러운 상류층의 담 높은 집에 들어서 계단을 올라(그렇게 처음 만나는 높은 곳의 사람들!) 처음 맞딱뜨리는 햇살.

잘 정돈된 새파란 잔디밭에서 햇살을 누리는 어린 아이 다송이에게 쏟아지는 햇살과 지하방에서 올라온 기우가 만나는 햇살은 조도도 온도도 다르다. (시종일관 내내, 끊어지고 이어지는 빛의 메타포!) 쏟아지는 햇살조차도  불평등하다

곰팡내나는 지하에서 꿈꾸던 눈부시게 아름답고 찬란한 햇살이 아니다.

 

기우가 처음 만난 이 우울하고 칙칙한 하늘, 자기의 의지나 능력이 아닌, 부자친구가 넘겨준 기회로 겨우 지상에 올라와봤지만 그 조차도 지상의, 2, 3층의 인간들이 누리는 그 햇살과는 같을 수 없다는 건 참으로 서늘하다.

 

"계획', "냄새","모르스부호","계단" - 하나의 주제로도 책 한 권은 너끈할 이 상징의 향연들.

이 영화이야기를 몇 줄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길게 이어갔다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귀차니즘으로 이만 접는다.

 

- 그런데, 등불을 깜박여 보내는 아랫세상의 신호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기우는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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