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지만 한두 번 보고 고민하는 것으로는 이 악랄한 빅힛의 기획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발랄뽀짝귀염둥이부농 컨셉이었던 작은시의 옴맘마마이가 아직도 머리속을 휘젓고 있는데 이번엔 말 그대로 의식의 압도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었고, 성공하고 싶었고, 다른 무엇이 아닌 내가 되고 싶기도 했던, 그러나 세상 끝의 끝까지 올라가보니 거기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허공, 두려움과 외로움의 또다른 세상이었다는 슈가의 섀도우.
순수하고 지고의 존재인 듯한 백조와 도발과 욕망의 흑조.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 이들에게 그 우주 끝의 블랙홀 속에서 헤엄치는 블랙스완의 깃털은 당연히 보이지 않을 터.
케이팝 아이돌들의 칼군무야 이미 소문난 바지만, 그러나 단 한번의 무대로 세계를 경악시킨 저 일곱의 흑조들은 어느 별의 움직임 속에서 떨어져내린 날개들이란 말인가.
- 망가져버린 신체기능이 아직도 다 돌아오지 않기도 하고, 때아닌 외국어 공부에 고개쳐박고 사느라 남들보다 두 배는 긴 하루들을 살고 있어서 도무지 조금이라도 긴 글줄은 갈길 엄두는 내보지 못하지만 오늘 본 그림- 아니 컨셉포토에 대해선 도저히 참지 못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정물화냐 뭐냐로 떠들썩 한데 내가 보기엔 이건 딱 바니타스입니다.
바니타스가 무엇인가.
-이전에 이 꿈집 그림방에 올렸던 글을 고대로 긁어오자면.
바니타스-
아드리안판 위트레흐트(Adriaen van Utrecht, 1599~1652)
16-17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미술 사조 바니타스.
서양화에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만나본 적이 있을 법한 그림입니다.
화면 가득 아름다운 꽃들과 악기들, 투명하고 아름다운 술잔과 잘 익은 과일들이 테이블 가득 차려지고 온갖 화려한 보석들과 값비싼 모피와 비단이 관람자들을 즐겁게 합니다. 부유하고 화려한 장식들을 보면 평범한 서민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금력을 향유하는 집안을 채우던 것들임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가만 보자... 꼼꼼히 들여다보자니 조금 이상하군요.
아름다운 꽃들은 만개한 나머지 이제 시들 일만 남았고 달콤한 과일은 얼룩이 보이는 것이 벌써 조금씩 상해가고 있습니다. 식탁 위의 생선은 펄떡임이 멎은 지 오래이고, 사냥감인 자고새도 죽어버렸습니다. 술잔은 비었고 그 술을 채웠던 저그는 엎어져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이렇게 화려한 식탁 위에 떡 하니 자리한 난데없는 불청객, 바로 해골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렇듯 풍요로운 식탁에 등장한 저 흉칙한 물건이 의미하는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이런 화풍의 정물화를 바니타스라고 합니다. 이 말의 유래는 성경 전도서의 구절 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에서 따왔습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한없이 아름답고 화려한 인간사의 증거물들이 죽음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으랴는 도저한 허무,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탄식입니다.
화려하나 이미 질 일 밖에 남아있지 않은 꽃다발, 비어버린 술잔, 쾌락의 상징이었던 악기들, 권력의 상징인 홀과 저울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보석들의 의미,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인 모래시계, 썩기 시작한 과일들- 이 모든 것들은 생명의 마지막이자 진실한 주인이기도 한 죽음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영광스런 승리의 상징인 월계관조차 말라비틀어진 잡초와 다를 것이 없군요.
17세기 네덜란드라면 발전하기 시작한 해상무역으로 인해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예술의 전 분야를 독점하다시피한 종교와 왕권의 지배를 벗어나 해상무역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스스로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한 상인계급, 부르주아가 탄생한 시기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그 자신감과 넉넉한 자금으로 스스로의 신분을 공고히 하고 이것을 과시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지원하였고 특히나 화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위대한 화가들과 명화들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시기에 이런 화풍이 유행한 것일까요?
필립 아리에스는 그 당시에 발생한 자본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생산물의 대부부을 즉시에 소비했던 중세와 달리 자본주의 경제는 이득을 남겨서 무한히 확대재생산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소득물이 정점에 달한 상태에서 그 것을 모두 소비하거나 낭비하지 않고 잉여자본을 확대하기 위해 현재의 향락을 절제하고 자제하자는 교훈이 숨어있다는 거지요. 물론 성경의 뜻 그대로, 무절제한 쾌락을 오만을 경계하고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유한하고 덧없는 인생에 대한 경고도 들어있겠구요.
바니타스 정물화는 대체로 이렇게 화려한 장식들과 더불어 해골이 흔히 등장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 기도하는 여인이나 수도사의 모습으로 그려져, 언젠가는 꺼져갈 촛불의 운명대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도 해골이 될 뿐인 운명, 모든 지식을 다 이룬 신학자나 수도사의 지혜조차 역시나 죽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도저한 허무주의와 함께 경건한 종교의 세계로 이끌기도 하구요.
타락에 대한 경계와 더불어, 인간의 가장 영광스럽고 화려한 날들 어디에서고 죽음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허무주의를 표현하는 화풍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아름답고 화려한 정물화가 심상하게 그냥 보이시지는 않지요?
죽음은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옷자락 아래에 와서 숨어있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역시 허무하게 그냥 보낼 수 많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지고 말 꽃이라고 저 아름다운 꽃들을 한숨을 쉬면서 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너희들이 할 수 있는한 장미 봉우리를 모으라.
늙은 시간은 쉴 사이 없이 흐르니 오늘 미소짓는 이 꽃도 내일이면 죽으리.
(예이츠)
유한한 인생을 그렇게 즐기고 청춘을 누리라고 한 시인도 있었는 걸요.
지는 꽃은 지는 모습 대로 아름답고, 꺼져버릴 촛불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자신을 태우며 어둠을 밝힙니다.
정물처럼 식탁에 차려진 풍성하고 신선한 과일들, 류트가 상징하는 음악. 인간의 영혼과 몸을 살찌울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들.
그런데 화면 구도는 관람자들의 마음이 편치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블랙의 공간이 크고 깊군요.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들 가운데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존재인 이 청춘의 일곱 뮤즈들의 얼굴은 또 이렇게 표정없이 굳어있습니다.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박제의 그림처럼.
무슨 뜻일까요.
디오니소스의 상징은 여전히 아직도 대놓고 이렇게 흘러넘칩니다.
포도, 청춘, 아름다움, 축제.
슈가의 배경이 된 장식을 보시나요?
고귀함, 영광.
술잔과 어두운 배경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바닷가재. 전형적인 바니타스의 상징들이죠.
아직 피지 않은, 그러나 제 뿌리에서 꺾어져 나온 순간부터 이미 죽음과 마주하고 있는 아름다운 꽃들.
다산의 축복과 젊음, 보석을 닮은 과일인 석류의 상징을 석진이 들고 있군요.
bts 멤버 중에서 가장 밝고 희망찬 얼굴이던, 그 자신이 희망이던 호비의 얼굴도 생명의 활기를 잃었습니다.
마치 영국 명문가의 성안에 있다는 유화사진들의 포즈처럼 한껏 내려다보는 차갑고 굳은 얼굴은 그가 지금까지 보여주던 그 퐁퐁 튀던 발랄한 음표들이 아니네요.
꺼져버린 촛불.
살아있는 이들이 염원하는 아름답고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모든 것들이 다 이곳에 있는데 이 방은 그림자도 존재할 수 없는 캄캄한 어둠속이고, 촛불은 꺼져있고 꽃은 시들어가고 더없이 아름다운 이 뮤즈들은 미소가 없습니다.
바로 이 사진 같은 그림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카라밧지오의 병든 바쿠스라는 그림입니다.
바쿠스는 디오니소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디오니소스에 대해서라면 도무지 짦은 글질이 불가능합니다.
디오니소스는 세멜레와 제우스사이에서 생겨났지만 위대한 제우스의 현신을 직접 대하고 싶었던 세멜레의 욕심으로 어미의 몸 속에서 꺼내어져 아비인 제우스의 허벅지에 이식되어 태어납니다. 즉 산채로 죽음에 존재했다 다시 태어나는 존재가 된 것이죠. 디오니소스는 죽음과 삶 경계를 파괴하며 등장했고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가지며 축제의 신인 동시에 그 축제의 광기로 인해 수많은 죽음들을 불러일으킨 혼돈의 신이기도 합니다. 또한 가장 위대한 신을 아버지로 두었고 죽은 인간여인을 어머니로 둔 존재이죠.
수많은 이들이 바쿠스,- 디오니소스를 그렸지만 나는 그 중에서 카라밧지오의 바쿠스, 그 중에서 이 병든 바쿠스를 가장 좋아합니다.
아름다운 소년의 맑고 티없는 눈동자들과 화려한 축제의 장들을 다 지나 만난 병든 바쿠스.
영원한 젊음의 신이던 바쿠스.
손에 쥔 포도송이는 아직도 싱싱하고 근육은 아직도 단단하지만 입가에 머무는 병색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들도. 우주의 질서에서 생명은 그 호흡을 부여받는 순간부터 이미 죽음과 이마를 맞대고 있습니다.
'죽음'을 다루었던 중세의 마카브르와 바니타스가 다른 점은 바니타스의 죽음은 우리들 생명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죽음의 그림자이죠.
동전의 양면처럼, 얼굴을 맞댄 야누스처럼, 절정의 아름다움과 추함, 하늘 끝 까지 올라간 영광의 순간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아득한 무저의 어둠. 그 순간 소리없이 다가와 서 있는 서늘하고 낯선 숨결 바니타스.
어쩌자고 bts의 새 앨범 컨셉에서 자꾸 이걸 떠올리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앨범에서 그토록 사랑스럽고 아름답던 디오니소스들은 어디로 갔지요?
그야말로 전 세계를 흔들고 들썩이게 만든 그 사랑스런 춤사위와 파스텔톤의 칼라들은 어디로 숨어버렸을까요?
블랙스완.-
차가운 겨울밤, 달의 호수는 얼어있고 세상의 소리는 다 사라진 유리같은 그 호숫가에서 펼쳐진 일곱 흑조들의 찰나의 꿈.
새도우 -.
돌아선 그림자들 사이를 걷는 슈가. 찬란한 빛 속으로 날아올랐는데 거기는 또 다른 그림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깨달음.
- 그럼에도 이들은 극복하고 자신들의 길을 찾아 나설테고 다시 그곳에서 스스로의 목소리와 날갯짓을 찾아내겠죠.
언제나 그래왔듯이.
물론 우리 방탄과 아미의 자아는 흔들리거나 부서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던지 우리는 연대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같은 꿈으로 숨을 쉬는 하나의 심장을 가지고 있을테니까요.
드럽게 길게는 썼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줄은 모르겠다능. ㅜㅜ
그러나 이 사진들을 본 순간 나는 전률할 수 밖에 없었고 내가 이 엄청나게 많은 미학의 텍스트를 품고 있는 이들의 팬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하고 기껍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공개될 다음 곡이 기다려집니다.
도대체 빅힛은 어디까지 우리를 끌고 가려고 이러는 거야.
내가 지금 서재의 책을 몇 권이나 끌어다 내놓고 뒤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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