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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돌말사람들

카스테라 - 마지막 회.

by 소금눈물 2014. 2. 13.

 

 

 

가끔 그 집이 생각났어. 길다란 복도가 있던 수영이네 집 말야. 유리창이 있는 복도가 있는 집은 그 집뿐이었지. 정말 예쁜 마당도 있었는데.”

 

그랬지. 큰외숙모 불쌍하다고 절대 그 집에는 가지 말라고 엄마가 화를 내도 수영이 핑계대고 슬금슬금 들락거렸는데.”

 

호봉이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나이도 어느새 그때의 큰 외숙모 나이만큼 먹어버렸다.

 

너희 큰외숙모는 정말 안됐어. 젊으나 젊은 나이에 남편은 첩을 봐서 한 동네에 들이고. 평생 자식도 없이 그리 살다 가셨으니. 수영이가 얼마나 미우셨을까?” 내 말에 뜻밖에도 호봉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꼭 그러지만도 않았던 것 같아. 큰 마당 앞 그 집을 큰 외숙모가 끝까지 팔지 않았던 건 수영이 때문이었다고 우리 엄마가 그러더라.”

 

수영이 때문에? ?”

 

돌아가실 때까지 수영이를 그렇게 기다리셨대. 아마도 큰외숙모는 진짜 수영이가 당신 아들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건 아닐까? 수영이 엄마가 재혼을 하게 되면, 호적상의 자식이 아니라 정말 당신 자식이 될 걸로 믿고 있었는지도 몰라. 혹시라도 수영이가 돌아오면 아버지, 엄마를 기억하게 그 집을 남겨두었는지도. 거기에 당신은 도무지 낄 수가 없겠지만, 그처럼 정말로 수영이를 사랑하셨는지도.”

 

그랬을까. 정말 큰외숙모는 그렇게 수영이를 기다렸을까.

 

작은외숙모는 어떻게 사셨대? 재혼하셨어?”

 

아니. 작은 외숙모도 그냥 혼자 사셨어.”

 

반쯤 식어가는 커피잔을 들며 호봉이 고개를 저었다.

 

외갓댁처럼 땅부자는 아니어도 작은 외숙모네도 꽤 잘 살았나봐. 작은외숙모 아버지가 교수라나 그랬지 아마? 그런 집에서 미혼모가 되어서 애를 안고 나타났으니 난리가 낫겠지. 그 때문에 그 양반 학교도 그만두고. 집안에서 쫓겨나다시피 하고 한참 고생을 하고 살았다나봐. 애 갖다 주고 재혼하라고 성화를 받았겠지. 그래도 당사자가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 못한다니 뭐 어쩌겠어. 자식 이기는 부모 있나.

말년에는 그럭저럭 잘 사셨대. 수영이도 잘 크고 좋은 대학 나와서 걔도 경기도 어디 대학에 있다나봐. 이번에 가서 보니 아유 뭐 정말 훤칠하더라. 즤 엄마 외모를 고대로 뺐어. 외사촌 동생인데도 가슴이 덜컥 하더라니까.”

 

호봉이 하하 웃었다.

 

그럼 그 집은 어떻게 되었어?”

 

담장 밖으로 흰 꽃이 쏟아질 듯 풍성하던 늙은 배롱나무가 생각났다. 구부러진 향나무 분재가 가득하던 정원도 떠올랐다.

 

큰외숙모가 새집을 우리 엄마한테 넘겨줄 때 약속을 받은 게 있어. 앞집을 내 집처럼 잘 관리하고 돌보다가 언제라도 수영이가 돌말로 돌아오면 그 집을 내주라고 했대. 그 약속을 받고 새 집을 엄마 명의로 주신 거야. 그건 진짜 큰 외숙모가 잘 하신 거야. 우리 아버지 명의로 내주었다간 그날로 당장 말아드셨을걸?”

 

선거자금으로?”

 

호봉과 나는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수영이는 그 얘길 아니?”

 

내가 얘기 했어. 작은외숙모 살아계실 때야 못할 말이지만, 작은외숙모도 돌아가셨으니. 시간나면 한 번씩 들러달라고 수영이한테 말했어. 아버지 산소도 있고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도 기다리실테고. 그리고 너를 기다리는 분도 또 있다고.”

 

찻잔을 내리며 빙긋 웃는 호봉의 눈가가 젖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앗의 자식을 그렇게 기다렸던 큰외숙모의 마음도, 그 고운 얼굴에도 끝내 재가를 하지 않고 혼자 살다 간 작은 외숙모의 마음도 알 것 같았다.

 

광주행 KTX가 잠시 후 역내로 진입한다는 멘트가 나왔다. 호봉이 가방을 챙겨 들었다.

 

정말 반가웠어. 내가 다시 전화할게. 우리 언제 같이 돌말에 가자.”

그래. 아이도 다 컸고 나도 이제 정말 고향도 한 번씩 들러보면서 살아야겠다. 그 집도 꼭 가 보고 싶다. 어떻게 변했을까 정말 궁금해.”

 

호봉이 내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승옥아. 우리 잘 살자.”

 

그래. 그리고...... 정말 자주 보자. ”

 

호봉이 내 어깨를 안았다. 나도 호봉의 어깨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호봉이 커피샵을 나가고 난 뒤 나는 자리에 앉았다. 호봉이가 뭉개놓은 치즈케익을 보니 오랜만에 카스테라가 먹고 싶어졌다.

 

여기 빵집 있어요?”

 빈 잔을 치우러 온 점원에게 물었다. 화장기가 옅은 아르바이트 점원이 있다고 했다.

 

문 열고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가시면 있어요. 거기 빵 괜찮대요.”

 

카스테라도 있을까요?”

 

무슨 그런 촌스런 빵을 찾느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웃던 점원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아마.... 있지 않을까요?”

 

나는 점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계산을 했다.

 

밖은 어두워졌다. 눈이 올 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밤새도록 불 기세였다.

나는 커피샵 문을 열었다.

 

안녕히 가세요.”

 

피곤에 지친 아르바이트 점원의 목소리가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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