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수상한지라,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혹시라도 불상사가 생겨 늦춰지거나 열리지 않는 건 아닌지 마음을 졸였다.
12월 초부터 개봉관을 검색하며 티켓이 열리면 맨 먼저 달려가겠다고 불끈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일찌감치부터 내 속을 태우며 예매를 하고 당일은 오늘까지 두근거리게 한 영화, <변호인>을 드디어 보았다.
며칠 전부터 나리한테 이 날은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 절대 1분도 퇴근이 늦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해가며 하루 종일 일이 미뤄질까 동동거렸다.
마지막 업무를 마치자마자 컴퓨터 전원 버튼이 꺼지는 것을 확인할 틈도 없이 미리 갈아입은 옷에 가방을 둘러 메고 극장으로 달음질을 했다.
영화는.... 좋았다. 정말 좋았다.
<그 분>의 이야기가 아니었어도,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정말 행복하고 좋은 만남이었겠다. 그러나 역시 나는 뼛속까지 노빠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절절했다.
옆에 앉은 친구에게 이러저러한 장면이 나오는 배경이 어떤 일 때문이라고 귀에다 속삭이고, 저 캐릭터는 우리가 아는 모모씨라고 알려주며 한 시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러 감독들과 비평가들이 이미 송강호의 절정의 연기력을 아낌없이 칭찬했다. 막눈인 내 보기에도 그렇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속물변호사가 각성을 하고 뜨겁게 불타오르는 시간 내내 나는 그에게 맹렬하게 빠져들어 그의 눈길을 따라가며, 불끈 쥔 주먹으로 마음을 옮겨가며 사로잡혀 있었다. 아 송강호! 정말 대단한, 대단한 배우다. 대한민국 사람 거의 다가 그 존재를 알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어떻게 구현할까 겁도 났을 것 같은데 그는 해냈다. 이 영화는 '노무현영화' 이지만 그보다는 '송강호영화'로 더 크게 다가온다. 평범한 한 세무변호사가 국가기관의 폭력으로 한 젊은이를 난도질하는 것을 목도한 후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대한민국 법은 무엇이냐, 대한민국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냐 외치는 법정 장면은 정말..... 분노와 슬픔, 그 처절하고 뜨거운 쇳덩이를 목구멍 아래로 억지로 억누르는 듯한, 우르르 떨리는 목울대와 물기로 차오르는 눈을 애써 누르며 검사와 판사를 향해 포효하는 그 장면.... 평생 잊지 못할 모습이었다. -.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라고 하지 않고 있다. 이 장면에서 송강호의 영화를 보고 있지만 그 너머의 누구, 우리가 놓친, 우리가 잠시 가졌던, 우리가 버린 그 사람을 나는 보고 있던 것이다.
몇 군데서 소소하게 웃었고 몇 군데서 박수를 쳤고 또 몇 군데서는 볼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그 해 12월 19일로부터 딱 11년이 지났을 뿐인데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어떤 고통 속에 서 있나. 소소한 행복에 들뜨고 행복했던 그 변호사, 뜨거운 함성으로 사자후를 토하던 그 투박한 초선 국회의원, 밀짚모자를 쓰고 고향 길을 자전거로 달리던 전직대통령이었다는 귀향농부를 잃고 우리는 무엇이 되었나. 우리는 어떻게 서 있나...
억누르고 드러낼 수 없었던 그리움에 비해 그를 만난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영화의 완성도야 어쨌든 얼마든지 더 보고 싶고 더 들어보고 싶은 목소리인데, 이제 시작인데 왜 저기에서 느닷없이 엔딩이 되나 섭섭하기까지 했다. 몇 번이고 다시 볼 것 같다. 그럴 것 같다. 누구하고라도 다시 볼 수 있다. 이제 처음 보았다. 내일은 다른 친구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전화를 할 것이다.
극장을 나오니 펑펑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해 12월 19일에도 눈이 왔다.
당선확정 소식을 카이스트 앞 호프집에서 들으며 환호했다. 처음 보는 낯선이들과 어깨를 겯고 춤을 추었다. 그들도 나도 울고 웃고 정신이 없었다.
흰 천처럼 깔리는 눈길을 걸어 집에 돌아온다.
그래. 우리는 저 시간을 견뎠다. 까짓거 또 해낼 수 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 보자. 그래봤자 바위는 죽은 것이니 결국에는 부서져 모래가 될 것이다. 계란은 살아 있으니 그 생명의 힘으로 바위를 뛰어넘을 것이다.
자꾸 눈물이 났다.
아픔 때문인지, 그리움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아니 칼바람이 부는 어두운 골목길 혼자 서 있는 내 그림자 때문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