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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밑줄긋기

그리스비극-1

by 소금눈물 2011.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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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 그것도 위대한 문학은 '애도'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 비극은 이의 전범(典範)이다. 나는 현재를 위해 죽은 자들로 하여금 죽은 자들 스스로를 매장하도록 하라는, 현재를 위해 과거를 망각하라는 니체와 마르크스의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역사가를 '죽은 자들을 식탁에 초대하는 사자(使者)'라 부르는 벤야민이 더 호소력 있다. 유대교 신비주의로 전향하기 이전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벤야민은 마르크스와 달랐다. 그에게는 과거가 현재보다 중요했다. 때문에 그는 그의 글 <역사철학테제>에서 혁명을 "과거로 향해 내딛는 호랑이의 도약"이라 했고, 증오와 희생정신에 불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의식은 미래 후손을 억압에서 해방시킨다는 이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억압받고 착취당한 선조에 대한 기억에 의해 자라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기억 저편 망각의 바다 속에서 억울하게 누워 있는 숱한 인간들을 그 비극으로부터 기억의 땅으로 끌어올리는 것, 나는 이것을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죽은 자들을 초대하는 사자'가 되는 것이 역사가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전쟁,폭력, 억압으로 인해 삶이 산산이 부서진 채 죽어간 수많은 시대의 희생자, 삶이라는 허무의 바다에서 허망한 몸부림을 치다 한갓 포말처럼 사라져간 숱한 존재를 망각의 바다에서 끌어올려 그들이 남긴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그들의 고통과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문학의 진정한 행위라고 본다.

 

p.15-16 작가의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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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은 신이 인간과는 다른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겼는데 바로 그것이 신과 인간의 차이라고 믿었다. 그 힘이란 곧 신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과 달리 언젠간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인간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위반하는 것을 '휘브리'(hubris), 즉 '오만'이라고 했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해석하자면 그것은 "의도적으로 모욕을 주는 행위, 즉 타인에게 고의로 수치와 불명예를 안기는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신에 대한 무례다." 죽을 운명인 인간이 자신의 운명적인 조건을 망각한 채, "신의 속성을 얻으려 하고, 신과 경쟁하려 하며, 지나친 자만심을 드러내는" "행위나 말, 심지어 그러한 생각"이 바로 '오만'이다.

 

생각나는 인간들이 엄청 많군...

물론 나 자신도 절대 도망칠 수 없는 말이지. 가진 것 없이 무례하고 교만한 자..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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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독어, 불어 등에서 '야만인'을 의미하는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바바로스(barbaros)다. 이 단어는 본래 '그리스어를 말하지 않는'이란 의미의 형용사로 사용되었는데, 명사의 형태를 갖추면서 '그리스어를 말하지 않는 이방인'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처럼 '그리스어를 말하지 않는 이방인' 전체를 가리키던 '바바로스'가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인들>에 이르면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비그리스인 전체를 가리키게 되고, 더 나아가 '야만인'이라는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인/야만이라는 이항 대립은 처음에는 무엇보다도 언어의 차이에 토대를 두었다. 그리스 말을 하지 않는 이방인의 말은 "원시성, 천박성, 지적 또는 문화적인 열등, 불합리성 또는 광기를 가진 거의 변치 않는 지표(指標)"가 되었고, 이와 같은 부정적인 특성이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한 이방인인 '야만인'의 특성과 결부되어 그리스인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요소로 쓰였다.

 

물론 아이스퀼로스가 그 작품에서 '바바로스'라는 단어를 통해 표면저긍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이방인'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그가 다레이오스의 입을 빌려 크세르크세스와 페르시아인 일체의 비이성적인 사고와 행동을 문제시하고, 그러한 그들의 야만성을 강도 높게 비난할 때, 그의 '바바로스'는 곧 '야만인'이 된다. 혹자의 주장대로 "그리스인이 없다면 야만인도 없다." 비록 아이스퀼로스가 '타자'인 페르시아인을 극의 주역으로 삼고는 있지만 "'타자에 관한' 또는 '타자를 위한' 모든 재현은 결국 주체중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원전 5세기 경의 '바바로스'라는 단어의 이런 의미의 변화는 아마도 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인들에게 각인한 공포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크세르크세스가 5백만명 이상의 대군을 끌고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그것은 곧 공포 그 자체였다. 어마어마한 수의 비그리스인들이 아테나이는 물론 그리스 전체를, 아니 서구 전체를 삼켜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페르시아 전쟁은 적어도 역사 이후 하나의 문명이 또 다른 문명에 대한 완전 정복을 기도한 최초의 대전이었다. 그러한 대전쟁이었기에 그리스인들이 아시아인들에게 경험한 공포는 강렬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한 공포의 강도만큼이나 증오도 강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버넬은 유럽 문명의 뿌리가 인도- 유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에 있다는 인식에 대한 반등으로 형성된 유럽중심의 구성물이 '헬레니즘'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헬레니즘'은 '타자'들- 대표적으로는 그리스 문명의 토대가 되었던 이집트와 페니키아 그리고 그밖에 당시 소아시아 중동 '흑인'들의 문명-의 문화적 영향력을 말소하려는, 또한 그러한 말소를 통해 이른바 '서양문명'의 인종적.문화적인 '순수성'을 유지하고 주장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 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학자의 주장을 두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찬반논란에 대해 여기서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당시의 문명국가가 아테나이의 민주주의 가치와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타자의 흔적을 지우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의 타자를 '야만인'으로 규정하는 작업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스퀼로스가 그의 작품에서 페르시아인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함으로써 작동시키고 있는 '타자화'의 논리는, 아테나이의 민주주의 가치와 그 정체성을 정립하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 또한 아테나이 시민에게 그러한 '신화'를 주입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 전까지는  그리스인과 비 그리스인들을 두고 언어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 그 시대의 혼을 담고 있는 예술작품, 더우기 언어예술인 문학 혹은 연극은 지배자나 혹은 피지배자거나 간에 프로파간다일 수도 있다.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을 다시 봐야겠다.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http://blog.daum.net/salttear/1801)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제국, 크세르크세스의 페르시아다. 그리스 비극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흠.. 복습해볼것!

 

 

p.46-47

 

임철규지음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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