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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밑줄긋기

도마복음이야기 -2

by 소금눈물 2011.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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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예수시대에 성립한 문헌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를 폄하시키는 발언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의 원래적 성격을 잘 나타내주며, 그 실상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예수는 원래 지혜로운 사람이었지 지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를 따르는 민중도 원래 지적인 민중이 아니라 소외받고 버림받고 수세대상으로서 착취당하는 하층의 군중(오클로스)이었다. 그리고 예수를 가까이 따르는 제자들도 거개가 지식인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문맹자들이었다. 어부인 베드로가 문자를 알 리가 없다(행 4:13). 따라서 예수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지적인 언어로 기록해두거나 문서화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 아니었다. 이뿐 아니라 예수도 그들에게 그런 지적 작업을 요구하지 않았다.

 

p.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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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관심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였고 당면한 인간의 구제상황이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가 말한 것을 전하고 가르치고(마 28:20) 설파하라(막 3:14)고 명령했지, 그의 말씀을 써놓으라고 권고한 적이 없다. 한마디로 기독교는 행위의 종교이며 구두(말씀)의 종교이다. 경전의 종교도 아니요, 문헌의 종교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초대교회는 긴박한 예수의 재림에 관한 믿음을 중심으로 모여든 군중의 집단이다. 이들은 곧 예수가 재림하여 이 어두운 세상에 대한 심판을 끝내고 그들 신앙공동체의 사람들을 천국으로 휴거해 가리라고 믿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이 지상에서 무슨 경전을 만들어 두어야 할 하등의 필요성을 느꼈을 리 없다. 어차피 최후의 심판의 날이면 이 세상은 불바다가 되어버릴 판인데 파피루스 쪼가리가 큰 의미를 지닐 까닭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경전의 결집(結集)을 중심으로 전개된 초기불교의 역사와는 아주 대조를 이루는 역사적 상황이다.

 

푸코 <장미의 이름>의 맹인 수도사 호르헤신부의 <문서>에 대한 집착과 욕망, 그리고 그 반작용인 저주를 생각하노라면 이들의 모태인 기독교가 본디 문자를 염두에 둔 종교가 아니었다는 말이 정말 반전이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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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경과 외경의 구분으로서 가장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지니는 기준은 제3의 항목이 될 수밖에 없다. 교회 내의 의견의 일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정경을 확립시킨 것은 교회였다. 정경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27서 정경을 만든 것이다.

 

오!!

 

p.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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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신관의 존중이 왜 다원주의의 부정을 의미해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진정한 유일신론은 종교적 문제를 포함한 삼라만상의 다원성을 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일(一)은 곧 다(多)이다. 진정한 유일신은 오로지 하나일 수밖에 없으며, 오로지 하나인 신은 전체일 수밖에 없다. 전체가 아니라면 타에 의하여 국한되는 개별자가 되고 만다. 그것은 유일신론이 아닌 단일신론에 불과하다. "나의 하나님"만을 배타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유일신론이 아닌 저급한 다신론적 세계관 속의 단일신의 권력적 횡포에 불과하다. 그것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 저주의 개별신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탈레반의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은 그릇 해석된 유일신론의 횡포에 불과하다. 탈레반의 하나님과 한국 대형교회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을 통괄하는 오직 하나이신 전 우주적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이, 편협한 인간의 언어와 가치관으로 해석된 단일한 하나님 상(像)의 강요는 전도주의적 획일주의의 만행에 불과하다. 그것을 순교의 사명이나 진취적 정신의 개가로서 예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이스탄불에서 서울의 어느 대형교회가 파견한 한국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10년 선교활동을 하면서 한 명의 개종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 개종자는 무슬림사회로부터는 아웃캐스트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10년 동안의 선교활동비는 적지 않은 돈일 것이다. 한국 기독교 서민대중의 정성어린 연보 돈이 이런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과연 하나님 땅끝선교의 위대한 사업이라고 해야 할까? 그보다는 더 절실하게 이 땅의 바로 이웃에서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들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나라, 특히 무슬림을 향한 막무가내식의 한국기독교선교를 나도 혐오한다. 내 식의 종교, 내 식의 선교만이 유일한 절대신이고 나와 다른 공동체의 정서나 환경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이런 폭력을 과연 하나님이 칭찬하실까 나는 도무지 의문이다.

 

p.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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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나의 상식적 인식의 지평을 넘어서는 타자(the Other)에 관한 모든 가능성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것의 제일의 조건은 타자 앞에 선 나라는 실존의 겸손이다. 모든 신앙은 존재의 겸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존재의 겸손... 아멘...!

 

p.184

 

 

 

도올 김용옥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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