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연스러운 정서를 단일한 종교로 묶어 통제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아무리 엄격한 규율을 만들어 의식을 강요한다 하여도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자연과 소통하고거기에매달리고 싶어하는 건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종교든 갈등없이 기존의 세력과 갈등없이 안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격렬한 갈등과정을거치고 친 후에세력다툼에서 이긴종교는 대부분은 그 직후가 가장 완고하게 정체성을 과시한다.하지만 이것도 쉽지만은 않은 것이 그때까지 그 땅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던 기존종교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자리를 내주기는 어려운 법이다. 불교와 힌두교가 번갈아 주도권을 가졌던 동남아에서 보면 종교사원이나 예술 분야에 양 측의 종교가 섞이고 융합하는 모습을 본다.우리나라의 사찰만 보아도정통 불교와는 상관없는, 샤머니즘의 모습인 산신각이나 칠성각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선점했던 토속신앙을 일정부분 인정해주고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정서의 저항을 줄이면서 안착하는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암흑시대로 생각하는 서양 중세시대는 사실기독교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중세시대 하면 생각나는 것은 엄격한 규율과 민중의 일반생활 수준과는 엄청나게 다른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의 모습, 성자들이 남긴 수많은 기념물과 그들을 기리는 미술작품들이다. 종교의 권위가 세속의권력보다 결코 약하지 않았고 그 권위에 도전하는 세속의 힘과 수시로 충돌하여 시대를 가름하였던 것이 중세시대였다. 그 중세의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 아마도 고딕건축일 것이다.
이 책은 그 고딕건축에 깃들인 유럽 중세의 정신, 그 속살을 살피는 책이다.고딕양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그 까마득한 높이의 첨탑들, 쾰른성당이나 노틀담성당 등의화려한 겉모습 뿐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고딕은 지역과 시대를 달리하여 어떻게 변하고근대와 소통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가볍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었다.고딕양식을 그 땅을 먼저 선점했던 자연종교에 대한 숭배의 흔적에서 찾는 점이 새로왔다.그 화려한 첨탑이 울창한 숲을 상징하고괴수장식들이 숲에서 살던 정령들의 모습이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었다.
기독교는 자연숭배와 샤머니즘의 흔적을 지우려 애를 썼지만 상대적으로 소수일 수 밖에 없는 사제와 권력층은 민중의 격렬한 정서적 저항을 결국 일정부분 수용하여 교회 내로 끌어들일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의 정통 경전에서는 사실 찾아볼 수 없는자연숭배의 흔적이미사음악이나 건축내부의 장식, 혹은 연극이나 축제의 면면에 흐르는 것이다.
딴 얘기지만 문득 우리나라의 종교모습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이단'에 대해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개신교이지만 사실 개신교의 출발도 그 어떤 종교보다 극렬한 증오와 반대를 거쳐 인정받았지 않은가. 해 아래 어떤 것도 새로운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는 예수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아주 불성실한-)개신교도이지만 흔히 개신교도들이 보이는 그 독선과 오만에 대해선 아주 불편하다. 이것은 내가 기독교인이니 기독교인들의 행투가 먼저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욕을 먹으며 미움을 받는 집단에 개신교도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 원인은 대부분 자초한 것이지 않은가.
어떤 종교든 그 종교의 기둥은그 신도의평안과 그 사회의 평화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들만 거룩하게 선택받았다 주장하며 그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종교인들을 보면왜 저들은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며 남의 눈의 티끌만 보고 그리 아우성인지 모르겠다. 크게 바라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인 구성원의 도리를 행하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지 말자는 소리다.
종교가 태동했던 시기의 모습을 보아도 그리 평화롭지 않았던 것을 보니 종교의 본질이 평화보다는 칼을 들고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던듯 싶기도 하다. 나약한 인간이라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해절대자의 힘에 의지해서 버티고 싶었던 것이라 종교는 어쩔 수 없이 어떤 시대에나 존재할 수 밖에 없었구나 싶지만... 씁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제목: 고딕, 불멸의 아름다움
지은이 : 사카이 다케시
옮긴이 : 이경덕
펴낸 곳 : 다른세상
어떤 종교든 갈등없이 기존의 세력과 갈등없이 안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격렬한 갈등과정을거치고 친 후에세력다툼에서 이긴종교는 대부분은 그 직후가 가장 완고하게 정체성을 과시한다.하지만 이것도 쉽지만은 않은 것이 그때까지 그 땅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던 기존종교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자리를 내주기는 어려운 법이다. 불교와 힌두교가 번갈아 주도권을 가졌던 동남아에서 보면 종교사원이나 예술 분야에 양 측의 종교가 섞이고 융합하는 모습을 본다.우리나라의 사찰만 보아도정통 불교와는 상관없는, 샤머니즘의 모습인 산신각이나 칠성각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선점했던 토속신앙을 일정부분 인정해주고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정서의 저항을 줄이면서 안착하는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암흑시대로 생각하는 서양 중세시대는 사실기독교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중세시대 하면 생각나는 것은 엄격한 규율과 민중의 일반생활 수준과는 엄청나게 다른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의 모습, 성자들이 남긴 수많은 기념물과 그들을 기리는 미술작품들이다. 종교의 권위가 세속의권력보다 결코 약하지 않았고 그 권위에 도전하는 세속의 힘과 수시로 충돌하여 시대를 가름하였던 것이 중세시대였다. 그 중세의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 아마도 고딕건축일 것이다.
이 책은 그 고딕건축에 깃들인 유럽 중세의 정신, 그 속살을 살피는 책이다.고딕양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그 까마득한 높이의 첨탑들, 쾰른성당이나 노틀담성당 등의화려한 겉모습 뿐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고딕은 지역과 시대를 달리하여 어떻게 변하고근대와 소통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가볍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었다.고딕양식을 그 땅을 먼저 선점했던 자연종교에 대한 숭배의 흔적에서 찾는 점이 새로왔다.그 화려한 첨탑이 울창한 숲을 상징하고괴수장식들이 숲에서 살던 정령들의 모습이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었다.
기독교는 자연숭배와 샤머니즘의 흔적을 지우려 애를 썼지만 상대적으로 소수일 수 밖에 없는 사제와 권력층은 민중의 격렬한 정서적 저항을 결국 일정부분 수용하여 교회 내로 끌어들일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의 정통 경전에서는 사실 찾아볼 수 없는자연숭배의 흔적이미사음악이나 건축내부의 장식, 혹은 연극이나 축제의 면면에 흐르는 것이다.
딴 얘기지만 문득 우리나라의 종교모습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이단'에 대해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개신교이지만 사실 개신교의 출발도 그 어떤 종교보다 극렬한 증오와 반대를 거쳐 인정받았지 않은가. 해 아래 어떤 것도 새로운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는 예수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아주 불성실한-)개신교도이지만 흔히 개신교도들이 보이는 그 독선과 오만에 대해선 아주 불편하다. 이것은 내가 기독교인이니 기독교인들의 행투가 먼저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욕을 먹으며 미움을 받는 집단에 개신교도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 원인은 대부분 자초한 것이지 않은가.
어떤 종교든 그 종교의 기둥은그 신도의평안과 그 사회의 평화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들만 거룩하게 선택받았다 주장하며 그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종교인들을 보면왜 저들은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며 남의 눈의 티끌만 보고 그리 아우성인지 모르겠다. 크게 바라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인 구성원의 도리를 행하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지 말자는 소리다.
종교가 태동했던 시기의 모습을 보아도 그리 평화롭지 않았던 것을 보니 종교의 본질이 평화보다는 칼을 들고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던듯 싶기도 하다. 나약한 인간이라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해절대자의 힘에 의지해서 버티고 싶었던 것이라 종교는 어쩔 수 없이 어떤 시대에나 존재할 수 밖에 없었구나 싶지만... 씁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제목: 고딕, 불멸의 아름다움
지은이 : 사카이 다케시
옮긴이 : 이경덕
펴낸 곳 : 다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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