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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여보, 나좀 도와줘

by 소금눈물 2011. 11. 28.

 

07/08/2009 03:11 pm공개조회수 1 0

되도록이면 피해가려했다.

귀 막아도 넘치는 뉴스, 그것만으로도 넘치게 괴로웠다. 더구나 내가 들락거리는 동네가 다 거개가 거개다. 가라앉아보았자 눈물바람이고 터지면 통곡에다 저주다. 어쩌면 그렇게 박힌 대못이 평생을 가리라. 아니 평생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슬픔만으로도, 이 고통만으로도 너무 힘이 들어서 이런 책은 읽지 않으려 했다. 나중에라도 조금씩 가라앉으면, 견딜 수 있으면 그때나 읽으려 했다. 나는 아직도 그 주일의 신문을 쌓아놓고만 있지 읽지를 못했다.


그런데 내가 피해간다고 도망갈 수 있는 게 아니었나보다. 돌아보니 사무실 동료들 책상마다 돌아다니는 게 그의 책들이다. 나처럼 시끄러운 지지자도 아니었고 그다지 책을 가까이 하는 이들도 아니었으면서 아주 열심히들 읽고 있다. 내가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주문서를 아직 내지 않았던 책들도 벌써 몇 보였다. 그렇구나...이렇게들 뒤늦게라도 그의 마음을 읽고 싶어 하는구나. 그렇게 그는 다시 우리에게 왔구나... 눈가가 아파온다.


주문서를 내었다. 책이 오는 동안 이 책으로 먼저 시작한다.


이미 지난 2002년 대선 시즌에 크게 화제로 떠올랐던 책. 여기 실린 몇 구절은 조중동에 의해 왜곡되어 확대 재생산되었다. 난데없이 행간을 뚝 잘라 이어붙이고 조작한 그 나쁜 이미지는 '그가 직접 쓴 그의 본모습'으로 그에게 또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때도 그는 그 말들 하나하나에 변명을 하지 않았다. 맞아, 그랬어, 그때 나는 그렇게 부끄러운 짓을 했어- 하지만 그런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극복하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진실이었다.


정치인이 아니라도 조금만 이름이 나면 자서전이라는 형식으로 책을 낸다. 사실은 누군가가 윤색한 대필소설이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 사실도 독자의 대부분은 짐작한다. 그렇게 나온 자서전은 본모습과 상관없이 자랑을 위해 씌어지기 때문에 포장되고 윤색된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쓰지 않았을까.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굳이 저런 식의 어떤 목적이 필요치 않은 환경에서 쓰는 회고록도 아니었으면서, 논란을 불러올게 뻔한 에피소드들을 굳이 집어넣고 일일이 짚어보고 미안해하고 괴로워하면서.


그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여는 글에서 처음 밝히는 것처럼, 그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수십 년 전의 그런 부끄럽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내어놓고 그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는 그 모습이 바로 그의 본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돌아갈 줄을 모르고 자신을 포장하여 스스로와 남을 속여서 아름답게 비취기를 하지 못하는, 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무한한 애정과 존경심을 갖고 있는 나 같은 무한애정의 독자가 보기에도 이 책에서 보는 몇 몇의 모습들은 슬그머니 웃음이 나기도 하고 멋쩍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의 부끄러움과 안타까움, 미안함은 사실 그의 과거기도 하면서 나의 과거기도 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가 저지른 자잘한 잘못과 부정을 나는 똑같이 가졌었다. 초등학교 때 그다지 똑똑치 못한 친구들을 이용한 적도 많았고, 친구가 갖고 있던 좋은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훔친 적도 있었다. 가난이 싫었고 지겨웠고 그 암흑 같던 몇 년의 시간 동안 내내 나를 절망케 하고 또 일어서게 한 것은, 내 인생에서 이 몇 년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기대, 다시 겪지 않을 지옥의 시간들이라는 것이었고 그 오기로 희망을 만들어서 이겼던 것이다. 그의 역경에서 나의 지난날을 투사했고 그의 여정에 내 희망과 기대를 얹어서 그를 응원한 것이었다.


그게 나뿐이었던가.

못난이 노무현, 가난하고 빽도 없고 학벌도 내세울 것 없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평생 버리지 못하면서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잘 보이던 그 사람은, 그 사람처럼, 또 나처럼 보잘것없고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이 책은 그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쓴 글이다. 그러니 얼마든지 자랑하고 내세울 것이 많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 시기엔 우리 정치사에서 아무도 갖지 못한, 아니 생각지도 못하던 엄청난 팬덤을 확보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내색이 전혀 없다. 잘 나가는 스타 정치인의 뻔한 회고록이 아니라, 더없이 애틋하게 사랑했지만 이제는 티격태격 다투며 주도권싸움에 밀려버린 호랑이 아내에 대한 투정, 좌충우돌 풍운의 시절 그를 만들어준 젊은 학생들과의 논쟁, 그리고 그가 그토록 아끼던 노동자들의 고통... 그 과정의 간난을 숨김없이 드러내어 고백하면서 우리가 아는 그 노무현의 지난날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는 유시민의 말마따나 신격을 가진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그 상처와 오류를 뛰어넘어 스스로를 갈고 닦아 우리가 아는 그 모습으로 마침내 남게 된 그는 분명히 승리한 인간이었고 그렇게 뛰어난 인격이었다.


비문과 어색한 띄어쓰기의 문장들을 다듬지 않고 날목소리로 드러낸 그의 말들이 너무나 그립다. 그가 간 뒤에도 이렇게 저렇게 그를 추억하고 재단하는 말들은 차고도 넘치지만, 그의 육성은 이제 기록된 영상이나 그를 추억하는 문서 속에서나 만날 수 있다.


듣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은데. 답장을 기다리는 물음이 내 안에서 산이 되어 쌓이는데...



제목 : 여보, 나좀 도와줘
지은이 :노무현
펴낸 곳: 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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