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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아내가 결혼했다

by 소금눈물 2011. 11. 24.

 

12/10/2006 07:37 pm공개조회수 1 8




나는 축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많이들 그렇듯이 A매치에만 잠깐 흥분하고 내가 좋아하는 김남일의 뉴스에만 관심을 가지는 정도일 뿐이니 이 말은 사실일 것이다.
월드컵 때는 축구게시판 죽순이로 붙어살지만 역시나 그런 이벤트를 좋아할 뿐이지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축구의 역사와 규칙만으로 인생이 이렇게 혼란스러워질 일은 없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책에서 말한 중국의 어느 오지 아니더라도 분명히 지구상에는 일처다부제의 습속이 남아있는 곳이 있을 것이다.
하기야 일부다처제든 일처다부제든 혹은 일부일처제이든 그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가치의 현실적인 순응이 이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이유와 그에 대응되는 갈등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전 아내가 결혼했다" 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오마이 갓! 아내가 결혼했다고?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온전한 배우자인 남편, 나를 두고?
얼마나 골치 아프고 곤란한 상황일까.. 싶었는데 골치아프고 곤란한 상황이긴 했지만 문장도 그렇진 않았다.
중간중간 얼마나 배를 잡고 웃었는지. 그야말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폼을 잡고 아닌 척 문장을 쓱쓱 써 나가다가 이쯤에서 도저히 내가 참을 수가 없다고- 경기장 안으로 발을 쑥 디밀고 마는 관중처럼 (자신이 공격수이고 골키퍼 이면서 관중이 되어버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니 ^^) 툭 한마디씩 내뱉는 괄호안의 말들 말이다.

역시 글은 지은이가 편하고 즐거워야 읽는 이도 그 호흡을 그대로 따라간다.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아마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심을 했겠지만 분명히 스스로도 즐거웠을 것이다.
재미있는 소설이 좋다.
말발이 좋은 작가가 끝까지 그 흐름을 흐트리지않고 잘 끌고 갔다.
발상이 발칙하지만 도저히 원치 않는 그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익숙해져가는 소심하고 착해빠진 남자주인공의 심리에 독자는 설복을 당한다.
이 작가의 힘은 공격수의 재치와 수비수의 긴장, 경기를 잘 풀어가는 감독의 손짓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축구에 대해 잘 아는 이라면 더 즐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축구에 거의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읽는데 절대 난감하지는 않다.

모처럼 흡인력 좋은 소설에 푹 빠져서 낄낄거리고 하루를 보냈다.
작가의 재능이 참 부럽다.
헛소문만 요란한 밥상이 절대 아니었다.



제목: 아내가 결혼했다
지은이:박현욱
펴낸 곳: 문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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