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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강철로 된 책들

by 소금눈물 2011. 11. 24.

 

04/23/2006 05:21 pm공개조회수 1 5




호젓하고 한적한 휴일 오후
대개 내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넓은 베란다 창가이다.
햇살이 눈부시게 넘쳐 흐르는 날이나, 오늘처럼 비묻은 바람이 내내 창문을 흔드는 날이거나
나는 창가에 편한 의자를 하나 갖다두고 종일 책을 읽는다.
책에 빠져서 정신없이 읽다가, 이따금 꽂히는 문장을 메모도 하고, 다른 <참고> 서적을 찾아 책장을 들락거리기도 하면서 -

높이 떠오른 햇살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나비처럼 둥실 흐르는 모습, 혹은 색색의 날개를 단 풍향계가 팔랑거리고 돌아가는 풍경에 자주 내 눈길은 책장에서 멀어지고 이따금 읽던 글줄을 놓치고 한참을 정신을 팔지만 - 나는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한때임을 안다.
이후에라도 몹시 그리워하리라고.

시인, 소설가, 평론가, 편집자...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은 무엇이었을까.
한때 공전의 히트를 한 시집을 낸 출판사도 했으니 (아직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꽤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했겠지만 내게는 앞의 이름들이 더 익숙하다.
어둡고 답답한 이십대의 초반에 나는 그의 소설과 평론을 좋아했다.
남들 다 가는 제도권의 과정을 건너뛰고 무작정 도서관에서 처박혀 콜린윌슨을 읽으며 보냈다는 가난한 청년 장석주. "검은 옻칠을 한 목관과도 같은 밤"-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그의 문장이다.
그러고보니 그의 소설과 시집과 몇권의 평론이 내 책꽂이에 있다.
"한때" 좋아했던 그의 작품이, 나같은 허접하고 별볼일 없는 독자에게도 이렇듯 몇권이나 있으니 그의 활동이력이 참 부럽다.

이 책은 그가 그렇게 읽은 책들에 대한 서평- 이겠으나 사실은 서평이라기보다는 그 책들을 이끌고 와서 쓴 수필집에 가깝다.
시인의 말들을 어쩔 수 없이 자제하지 못하면서, 평론가의 날카로운 혀를 숨기지 않고, 부글거리는 소설가의 상상력과 결단으로 그는 그렇게 읽고 썼다.
무지막지하게도 읽고 있구나. - 숨길수 없는 부러움과 질투로 나는 몇 번이나 중얼거린다.
한 꼭지 밑에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이란 꼬임으로 붙여놓은 몇 권의 다른 책들이 기를 질리게 한다.
단지 문학 뿐 아니라, 환경, 생태, 건축, 철학, 혹은 지식인의 모습에까지 두루 지평을 넓혀간 독서의 품이라니... 내 참, 죽을 때까지 나는 이렇게 미친 듯이 읽고 쫓아가도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가 직업적으로, 혹은 순수한 열망으로 하는 그 무지막지한 독서의 양.
엄청난 이 모든 독서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꼭지 밑에 그러나 그가 하는 "방법"은 나에겐 좀 마뜩치가 않다.
책 읽기에 앞서 전체를 먼저 통찰하고 구획을 나누며 그 문장의 키워드를 만들어 통과하는 방법을 깨달아서 자기것으로 하는 것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빨리 읽는 글중에, 그가 놓치고 혹은 버린 글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솟아난다.
나는 물론 평균의 사람들 보다 약간은 빠른 속도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저자와 마찬 가지로 그저 좀 많이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익혀진 것이다.
하지만 창작자의 입장에서, 독자가 그렇게 취사선택하고 버린 낱말들, 문장 중에는 그가 밤을 줄이고 머리를 뜯어가며 고심한 그 한마다기 있을 거라는 미안함 같은 것이, 이해를 다 마치지 못하고 휘리릭 넘어간 책장에 있다.
물론 아무리 훌륭한 작가의 책이라 해도 모든 문장이 다 옥고는 아니다. 군더더기도 물론 많고 문장에 어울리지 않는 말도 얹혀 있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읽어서 판단하고 감상할 일이지, 읽고 판단하기도 전에 전체의 흐름에서 미리 빼버리기엔 나의 판단미숙이 무섭지 않은가.
(내가 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몇 편의 소설을 떠올리면서 지금 이렇게 나는 사실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구입도서 목록이 무진장 길어졌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산책도 시작하게 되었다.
산책, 혹은 걸음에 대한 그의 예찬 때문이었다.

오후에 지나간 소나기 때문에 저녁햇살이 더 투명한 저녁이다.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고 동네를 돌아보아야겠다.



제목 : 장석주의 책 읽기 1 -강철로 된 책들
지은이 : 장석주
펴낸 곳 : 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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