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명/낡은 서고

나, 황진이

by 소금눈물 2011. 11. 24.

 04/16/2006 07:27 pm공개조회수 1 9



봄볕이 좋았다.
하루종일 베란다에 의자를 꺼내놓고 앉아서 책을 읽었다.
놀이터에서 노랑나비처럼 나는 아이들에게 자꾸 시선을 뺏겼고, 자신이 걸어온 꿈결같은 길을 이야기하는 옛 명기의 이야기는 자꾸 내 손에서 멀어졌다.

향기로운 지향과 폭폭한 삶의 노정.
명분과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대부도 아니고 일개 노류장화가 팔자일 기생이 말하는 지향과 길이라..
그녀가 시대를 풍미했던 명기였든, 아니면 길이 그 향기를 전하는 시인이었든...말이 깊고 뜻은 더 깊은 글들은 자꾸 내 발목을 잡았고, 익숙치 않은 고어와 단어의 괄호는 버거웠다.

일전에 읽은 황진이가 전범은 아니다.
그것은 그 작가가 불러오고 그리는 황진이고 또 이 황진이는 이 작가가 사모하고 기억하는 사람일 것이다.
문득, 내 종사관의 자리가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
수십만 다모폐인 중, 한다하는 글쟁이들, 한다하는 이름있는 이들이 그리는 종사관과 내 종사관.
네가 그리는 종사관은 하고한날 눈물바람이고 왜 그리 나약하느냐. 자신이 생각키에 종사관은 사랑이 절대인 이는 아니다 하는 비난도 있었지만
물론 나는 내 종사관이 절대라고 하지도 않았고 사랑이 그의 인생에 절대적이라고도 생각치 않았다.
내가 그리는 그리움의 한계가 거기까지여서 한스럽다고, 내게 주어진 몫이 그뿐일 것이라고 한탄한적이 있다.
사모하고 그리워할 몫만큼, 또 그 그리움을 표현할 재주만큼 드러내는 것이다.

전작의 황진이가 부드럽고 화려하고 눈물도 웃음도 많은 여인이었다면, 후의 황진이는 더 강단있고 뚝뚝한 이처럼 느껴진다.
물론 전작 황진이가 어린 시절부터 그 젊음을 관통하는 가장 부드럽고 치명적인 시절을 크게 조명했다면, 후의 황진이가 그 홍진의 세상을 모두 버리고 화담에게 귀의해서 자기철학을 가꾸며 갈등하기 시작한 면면이 더 크게 보이니 (사실은 이 책이 그 스승을 떠나보내고 스승과의 동행을 허태휘에게 보이는 글의 형식이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문체의 특징도 크게 다르기도 하다.
일인칭화자의 시점이 내밀한 고백에 좋기도 하지만 소설의 형식에서는 긴 이야기를 풀어갈때 그 감정이 독자에게 부담스럽기도 하다는 걸 깨닫는다.
더구나 어려운 고어가 이렇게나 많이 깔리고 일일이 그 주석을 읽어가며 자꾸 맥을 끊기는 소설에서는 감정에 온전히 빠져들기가 버겁다.
(내 무식이 크게 한몫했다.)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그 한줄의 말이 무엇인지를 끝내 찾지를 못하겠다.
소설 내내 그는 자기의 길과 명분을 이야기 하나 너무 많은 설명중에서 내내 그 말이 그 말 같기만 한. 끝없는 도돌이표를 듣는 것 같은 답답한 독서라니.ㅜ.ㅜ

몰입하지 못한 이유를, 고문(古文)에 익숙치 못한 내 무지와 저 찬란한 봄햇살에 돌리겠다.
어쩌랴. 오래가지 못할 저 아스라한 봄날, 잠깐의 햇살이 저리 고운 것을.
사라져서 다시 못올 시간이 이렇게나 애틋하고 아쉬운 것을.
묵은 말의 힘을 앗아가는 부박하고도 허무한 찰나 이것이 또한 이렇게 지나가는 젊음 또는 인생 아니었던가.




제목: 나, 황진이
지은이 : 김탁환
펴낸 곳 : 푸른 역사

'그룹명 > 낡은 서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철로 된 책들  (0) 2011.11.24
우리 궁궐 이야기  (0) 2011.11.24
방각본 살인사건  (0) 2011.11.24
황진이  (0) 2011.11.24
부드러운 직선  (0) 201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