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벌써 강으로 내려와 깊어졌다
저녁이 창백한 달 한 장
자작나무 숲에 걸어놓고 내려오면
나는 서둘러 강가로 나간다
영하의 기온이 시퍼런 칼날을 세워
통째로 귓바퀴를 오려내고
정신의 노둔함 속으로 저를 밀어 넣는다
내 안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것들이
소스라치며 칼날을 피하고
나는 잠시 묵은 현기증을 꺼내어
서서히 달빛이 맑게 걸리는 나무에 기대어 둔다
강 건너 이제 막 눈을 뜬 불빛들이
저녁강의 어스름을 밟고 와
눈을 맞추며 따스함을 건네 온다
저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발걸음이 고단한 곳마다 등불을 밝히면
이 지독한 혹한 속에서도 살아가는 일은 아름다운 것
낮은 불빛 아래 이마를 맞댈 생각이
빨랫줄처럼 그대의 창으로 날아가 매이고
나는 눈물뿐인 그리움을 꺼내 하얗게 널어둔다
저 혹한의 중심을 딛고 나는 건너가리니
고단한 삶의 누추를 단단히 얼리어 벽을 세우고
혹한의 맑음을 재단하여 창을 달아내면
그대의 이마에 징표처럼 돋아나는 분홍빛이여
내 삶의 남루들이 제각기 옷깃을 세우고 걸어가는
밤 깊은 겨울강의 단단한 얼음장 위,
한 무리 푸른 별빛이 쏟아지고 있다.
- 정철웅
입춘.
겨울의 입김은 아직도 단단하다.
우울하고 답답한 겨울.
봄이 되면 가벼워지라는 한 오리 기대도 없는.
봄은 오긴 오는가.
저 단단한 얼음장 깨지고 어디서 오긴 오는가...
'그룹명 > 낡은 서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비소리 (0) | 2011.11.24 |
---|---|
그대에게 못다한 사랑 (0) | 2011.11.24 |
간추린 중국미술의 역사 (0) | 2011.11.24 |
창가의 토토 (0) | 2011.11.24 |
모딜리아니, 열정의 보엠 (0) | 2011.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