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무겁던 하늘은 오후들어 기어이 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두잎 떨어지던 눈꽃이 금새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고 도로는 하얗게 부푼다.
간만의 평화.
조용한 사무실.. 따뜻한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오후 내내 책을 읽었다.
언젠가 신문 서평에서 참 느낌이 따뜻한 소개로 보았는데 오늘 보았다.
토토...
산만하고 호기심이 지나쳐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한다고 퇴학당한 꼬마아이.
대안학교인 도모에학원으로 가는 모습으로 이 작고 행복한 동행은 시작된다.
기차를 연결해서 만든 학교는 전교생이 오십여명밖에 안되는 작은 학교였다. 하지만 그 학교 학생들의 누구도 그 안에서 우울하거나 슬픈 아이들은 없다.
말썽꾸러기, 함께하기 곤란한 골치덩이였던 토토가 도모에학원에서는 순진무구하고 다정다감한 본디성품을 인정받으며 하루하루가 꿈같이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이 된다.
강아지 로키와 나누는 정. 손발이 불편한 소아마비 친구 야스아키와 나눈 우정,그리고 야스아키의 죽음으로 배우는 첫 이별, 여자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크게 깨닫는 오에, 키작은 다카하시가 상처받지 않도록 은연중에 아이들의 편견을 깨는 수업을 마련하는 고바야시선생님의 체육수업, 도모에학원의 작은 운동회, 아이들에게 요술쟁이처럼 보이는 료아저씨..
이 작지만 낙원같은 아이들의 보금자리는 바로 아이들의 마음을 아이들 그대로 보려는 교장 고바야시선생님의 교육이념때문이었다.
어딘가에서 조금씩 문제가 있는 아이로 눈치밥이 되기 쉬운 아이들은, 이 도모에학원에서만은 누구도 그런 아이로 보이지 않는다.
놀이같은 수업, 수업같은 놀이. 자연에 묻혀서 아이들은 아이들 본디의 그 아름다운 동심을 마음껏 발휘하며 자라고, 행여나 심신이 불편한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고바야시선생님은 정성을 다하여 아이들을 기른다.
태평양전쟁의 어두움이 조금씩 드리워지면서, 도모에학원도 전쟁의 불길을 피해갈수 없었고 학교아저씨인 료아저씨가 전쟁으로 출정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아이들의 마음에 군국주의 이념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던 선생님의 바람도 헛되이 바로 그 전쟁의 포탄속에서 학교는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어 버린다.
불타는 학교를 바라보며 그러나 선생님은 옆에 선 아들에게 외친다.
"자 우리 이제는 어떤 학교를 만들까?"
전쟁이 끝나고 료아저씨도 돌아오고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지만 선생님은 끝내 다시 서는 학교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선생님께 배웠던 도모에학원 학생들의 마음에는 그 사랑과 즐거움으로 가득찼던 학원과 선생님이 영원히 그리움이 되어 살아있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몇번이고 미소가 지어지고 책을 가슴에 안고 가만히 행복해했다.
이 작은 책이, 이 작고 천진난만한 꼬마아이가 이렇게 따뜻한 행복을 주다니...
지금이라도 나는 그 작은 기차학교 교정을 가 보고, 아이들이 자기집으로 정한 나무를 올려다보고 싶었다.
어른들보다 더 바쁜 요즘아이들의 삶을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절을 살았다.
공부보다는 노는게 더 일이었던 그 시절에도, 하지만 나는 토토처럼 행복하지는 못했다.
이런 학교라면 정말로 절실하게 다시 돌아가서 배우고 놀고 싶다.
이야기의 후기(이 이야기는 실화다) 에는 그 시절 그 말썽꾸러기들의 뒷모습도 그려있다.
정말 궁금했다. 그 작은 천사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지를.
사소한 장난과 더 큰 가르침으로 배웠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그 사랑과 믿음을 고스란이 안고 제몫을 온전히 해나가는 어른으로 자라 있었고 그들 모두에게 그 선생님과 짧은 그 학교의 추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고향이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당장 몇 권 더 살 생각을 한다.
내가 이 책을 꼭 읽히고 함께 이 감동을 나누고 싶은 이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급해진다.
교육이념, 아이들의 마음을 안아주는 교육자의 자세.. 이런 얘기를 나는 하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싶은 이에게,
갖지 못한 꿈같은 어린시절을 다시 얻고 싶은 이들에게 꼭 권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말을 새삼스레 떠올리는게 얼마나 하찮고도 먼 얘기인지를 느낄 것이다.
이건 그저... 그냥, 보이는 대로 세상을 보고, 그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던 한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의 이야기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의 회고록이다.
이 따뜻한 회상속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정말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는가를 알테니..
제목: 창가의 토토
지은이: 구로야나기 테츠코
옮긴이: 김난주
펴낸곳:프로메테우스출판사
'그룹명 > 낡은 서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강 (0) | 2011.11.24 |
---|---|
간추린 중국미술의 역사 (0) | 2011.11.24 |
모딜리아니, 열정의 보엠 (0) | 2011.11.24 |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 (0) | 2011.11.24 |
경찰서여 안녕 (0) | 2011.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