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명/낡은 서고

철학의 뒤안길

by 소금눈물 2011. 11. 24.

11/29/2004 12:09 am공개조회수 1 9



일주일에 한번 새로 나오는 책과 잊혀지는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한겨레 신문의 토요일자를 기다린다.
아무래도 신문에서 접하는 서평을 먼저 보고 마음에 드는 소개를 찾아 서점에 가 버릇해서인가보다.
이번주에는 즐거운 소식이 두 편 있었다.
몇 번 출판사를 바꾸어서 나왔었다는데 근래 들어선 절판되어 뜸했던 김희영씨가 옮긴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사랑의 단상 책읽기 클릭;;;) 이 다시 나왔다는 소식이고
또 하나는 바로 이 책이다. 아니 이 책인 것 같다.

구입한 날짜를 보니 92년 7월 9일. 盛夏의 폭염아래..라고 써 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군..
철학의 깊이까지야 내가 어찌 알겠는가. 사유나 연구 이전에 책을 읽기만도 훈련이 필요할 캄캄한 철학서적을 두고 도대체 내가 왜 사는지가 궁금해서 테트리스 하듯 뒤적거릴 때 접한 책일 게다.
그 중 가장 말랑거리는 쪽이어서 제법 재미가 있었는지 지금 뒤져보니 줄을 쳐 놓고 몇번이나 거듭해서 읽은 흔적이 많다.

토요일, 신문 서평에서 내가 본 책은 <철학의 에스프레소>였다. 그런데 저자가 바이셰델이라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꼼꼼히 다시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철학자는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존재와 달리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것을 겪어야 하는지를 탐구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즉 정의의 본질이라든가 다른 본질적인 물음이 문제될 때,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말지만 바로 이때 철학자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철학의 뒤안길> - 내가 가진것

“철학자는 인간이란 무엇이냐, 다른 존재와 달리 인간은 무엇을 행하고 겪는 것이 합당하냐 하는 점을 탐색하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탈레스는 개개의 물건(사물)의 쓰임새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물건의 본질을 문제 삼은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것의 기원, 원리, 근원을 물었던, ‘어리석어서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철학의 에스프레소>


탈레스가 별을 보다 우물에 빠진 일화를 예로 들면서 플라톤이 말한 이야기다.
내가 흥겹게 읽고 줄을 그어놓은 대목을, 그 책을 소개하는 이가 마침 꼬집어 책내용의 소개로 들은 것은 마치 감동깊었던 영화의 한 장면을 어느 누군가가 친구에게 나와 똑같은 감정으로 신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몰래 들었을 때 같은 유쾌한 즐거움을 준다.

같은 책인가?
책소개를 보니 같은 책을 덧붙여 다시 나왔다는 생각이 들만큼 기획이 비슷하다.
내 책은 철학자들의 소소한 뒷이야기와 그들이 따라간 인식과 고뇌의 별 이야기가 서른 두 편인데 철학의 에스프레소는 서른 네명이 등장한다고 한다.

철학을 어려워 하고 미리 멀리 할 것을 두려워했음인지 바이셰델은 책의 서두에 말하기를 그 철학의 뒷문으로 들어가서 주인을 만나는, 격식없고 편안한 책으로 쓴다고 했다. 그래서 이름도 철학의 뒤안길이다.
탈레스부터 비트겐쉬타인까지 내 머리로는 벅찬 심오한 대목도 있지만 중간중간 미소를 짓게 하는 에피소드도 풀어가며 가능한 한 너무 무겁고 답답하지 않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시간 내서 다시 보아야겠네.
근데, 참 즐거운 경험이긴 하다.
벌써 십 년도 더 전에 즐겁게 읽은 책이 다시 나와서 다른 옷을 갈아입고 (아닌가? 맞을걸 아마?) 볼우물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는 것 같아서다.


제목: 철학의 뒤안길
지은이: W. 바이셰델
옮긴이: 이기상 이말숙
펴낸 곳: 서광사

'그룹명 > 낡은 서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랫말 아이들  (0) 2011.11.24
사평역에서  (0) 2011.11.24
입속의 검은 잎  (0) 2011.11.24
저 석양  (0) 2011.11.24
고아떤 뺑덕어멈  (0) 201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