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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판도라 상자 의 문학

by 소금눈물 2011. 11. 24.



이것은 본격적인 문학평론이기 때문에 주파수가 맞지 않는 이가 많을 수 있다.
문학평론이라 함은, 텍스트가 되어 있는 문학작품이 전작으로 있다는 셈인데 그 소설이나 소설가를 알지 못한다면 이해하기가 좀 버겁고 또 아무래도 문학적으로 쓰이는 용어들로 그 소설의 속살을 예민하게 드러내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재미있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냥.. 이건 내가 좋아하는 평론가의 책에 대한 이야기다.
울적한 하루 뉴스에 지쳐서 오늘만은 정말 내가 읽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혼자 떠벌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평론읽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이래저래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문학평론집이 꽤 된다. 문학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접하는 평론은 평론가의 시선이 아무래도 결정적으로 작용하다보니 정말로 나쁜 독법이겠지만 텍스트와 별개로 평론읽기 자체를 즐기는 인물이니 어쩔 수 없다.

내가 처음 좋아한 이는 김현이었다. 그의 전집을 책꽂이에 모두 쟁여넣는 것이 한때의 소망이고 목표였는데 문학근처에서 얼쩡거려본 이력이 있는 이라면 모두 아다시피, (어떤 평가가 있던 간에) 김현은 우리 문학의 한 성채였다.
그 다음, 김주연, 김화영, 우찬제,하응백,반경환, 박혜경, 고종석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잘못찾아온 주인네 서가에 꽂혀있는데 요즘 젊은 평론가들 중 내가 참 좋아하는 이가 백지연과 김미현이다.
그 중에서도 김미현의 글쓰기는 그가 텍스트로 삼은 문학작품과 별개로 그 평론 자체가 내겐 참 설레는 만남이다.


고통은 가질 수 없을 때가 아니라 버릴 수 없을 때 커진다.

금서란 읽히지 않는 책이 아니라 몰래 읽히는 책

바타이유의 말처럼 문학은 결백한 것이 아니라 비난받아 마땅한 것임을, 그래서 스스로의 유죄를 변호해야 함을 일깨운다.

연가의 8할은 만가 (輓歌)



아.. 이 사람의 글에서 내가 훔쳐 외운 말이 몇 구절이었던가..
어떤 신문에서,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 또 라이벌이라는 백지연과 대담이 실렸었는데 그 신문의 쪽을 오려서 지갑속에 나는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1999년 8월 19일자 신문이었다.
어린 사춘기 소녀가 좋아하는 티비스타를 짝사랑하듯 나는 이 사람의 글을 두근거리면서 읽어나갔다.
어떤 문예지에 평론이 실렸던 어느날, 곧 평론집이 나온다는 프로필을 보고 몇날을 망설이다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세상에!! 그런 무모한 용기가!!)

막상 그가 전화를 받자 이 어리버리한 인간은 제대로 하고팠던 말도 잇지 못하고 무지 좋아한다는 사랑의 고백만 떠듬떠듬 풀다가 언제 책 나오냐는 소리만 하고 버벅거리다 끊어버렸으니...
그 후에 서점에서 이이의 신간을 보면서, 어느날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 버벅거리던 어떤 팬의 목소리를 그녀가 기억할까 싶어서 스스로도 웃음이 나왔다.

김미현의 평론은 명쾌하고 발랄하다. 김현처럼 그 감당하기 버거운 열정과 미문, 권력이 되어버린 태산같은 문학적 지식으로 미리 기죽이지도 않고, 김명인이나 반경환 날카롭고 차가운 절개(絶開 )도 멀어보인다.
그런데도 그녀의 문장에는 그의 말 아니고는 딱 맞춤이 아니되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그런 말이 살아 있다.

그녀가 거론하는 이름들, 이윤기, 송경아, 은희경, 박완서, 배수아, 조경란, 신경숙..
이미 그 작품들로 인정을 받은 이들이지만 김미현의 평론속에서 더 한번 빛나는 옷을 지어입는 이들이다.

아.. 나는 정말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짝사랑의 이름 하나를 가졌네.
그녀 김미현~!



제목: 판도라 상자 속의 문학
지은이: 김미현
펴낸곳: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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