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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에로스 훔치기

by 소금눈물 2011. 11. 24.

10/29/2004 06:55 am공개조회수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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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외설의 거리는 얼마나 멀고 또 가까운 것일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관습적인 도덕과 새로운 문화의 거리는 또 어디까지 충돌없이 용인될까.

이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지은이가 신문에 연재할 때 겪은 곤란, 이런 그림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싸구려 춘화묶음으로 뭉뜽그려 보면서 취급할 시선에 미리 걱정스럽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그림편지를 올리면서 보아온 손님들의 답글로는 그런 걱정이 생뚱맞지만 그만큼 등장하는 그림들이 수위가 높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기 욕망의 표현과 더불어 그 공동체의 목적에 따라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까마득한 선사시대부터였다. 그림은 인간의 본능을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고 성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고뇌는 가장 쉽게 이 그림으로 표현이 시작되었다.
시대와 사회는 다르고 그 표현방식이 얼마나 즉물적이냐 혹은 은유적으로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느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사회나 성과 성을 그린 미술에서 자유로운 사회는 없었다.
그 시기나 사회관습에 따라서 제의의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리이스 토기처럼 당당하게 전면에 성기노출을 하면서 거리낌없이 표현되기도 하고, 중세의 암흑기에는 성화와 신화의 틀을 빌어 여성의 누드를 신과 요정의 몸으로 거리를 두고 관람하는 위선을 떨기도 했으며 (사과 하나만 들고 있으면 얼마나 홀라당 벗고 있던 말던 그 여자는 아프로디테이니 신성으로 눈감아주어야 했고, 거룩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으면 보이는 젊은 여성의 유방보다는 보일듯 말듯한 성모의 미소로 애써 시선을 돌려줘야 했다. 왜냐. 그들은 신이었고 예술이었으니까~!) 적나라한 여성의 성기를 화면 가득 채우고 감히(!!) 세계의 기원이라고 일갈할 수 있는 (쿠르베) 시대를 비로소 통과해 지금 우리들 조차 다른 이의 시선에서 외설적인(혹은 예술적인) 그림을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 아닌가.
(아..이 문장..진짜 길다...-_-;; )

관습적으로 억제되는 질서는 종교보다도 더 강한 면이 있다.
서양의 강력한 종교적인 억압 밑에서도 나름대로의 표현의 돌파구를 만들어 생산되던 이런 그림은, 사회전체가 강력한 통치수단의 하나로 본성의 표현을 제지당하던 동아시아의 윤리질서 밑에서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성화나 신화라는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용인되는 표현의 수단이 없이, 은밀하게 사랑방에서 전해지는 조악한 춘화도나 몇몇 화원들의 여기(餘技)로나 남겨졌을 뿐.

이렇게 사회적으로 통제되는 사람의 본성은 또 그 사회가 불안해질 때 가장 강력한 표현의 무기로 등장하기 마련이어서 미술사에서 등장하는 노골적인 성 표현들은 그 사회의 극적인 변화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가장 효과적인 무기여서 가장 먼저 탄압되고 그런 충격이 사회구성원들에게 문화로 받아들여지면 그 다음에는 그 무기가 놀이가 되는 식으로.

지은이 이섭은, 각각 장을 나누어서

1. 자연스런 놀이 - 쾌락을 쫓는 여행
2. 그림 안의 성(性) - 무기를 들어라
3.신비, 살아남기 그리고 성스러운 도구
4. 순수의 의미, 아름다움을 찾아서

로 미술사에 나타나는 성의 표현에 따른 사회와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내버스 안에서 천연덕스럽게 책장을 펼쳐놓고 있을 내공이 아직 못되니 나 역시 이런 억압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이 그림 아래의 작가의 설명에는 정말 크게 공감하며 배우는 것이 즐거웠다.
이 책을 사보실 분들께는 책 뒤의 작가의 에세이를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각각의 장에 붙인 작가의 뜻과 이런 그림들이 품고 있는 세상을 보는 창에 대해, 내가 달리 덧붙인다면 알지도 못하고 주접을 떨어온 이력에 결정적으로 하나 더 덧붙이는 군더더기가 되겠다.


제목: 에로스 훔치기
지은이 : 이섭
펴낸 곳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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