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열무싹 한번 이쁘다야. 뿌릴 때 봉께 애기들 빠꿈살이맹키루 사부작사부작 혀서 싹이나 나올까 싶더만 그게 또 생것이라구 크긴 크네."
하하 웃는 소리에 모자챙에 늘어뜨렸던 수건을 젖혔다.
호봉엄마였다.
장에를 갔다오는지 물색고운 차림에 신문지에 싼 것이 삐꿈 고개를 내민 장바구니를 들었다.
"예에. 그래도 저것이 크긴 크네요."
경숙도 덩달아 씩 웃었다.
목덜미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수건을 끌어당겨 훔치는데 입안에서 자기도 모르게 단내가 훅 났다.
쥐고 있던 호미를 놓고 경숙은 기다시피 풀을 뽑던 고랑을 돌아보았다.
반나절을 주저앉았는데 돌아보니 겨우 손바닥만한 밭고랑이다.
밭고랑 밑으로 개비름이며 강아지풀, 별꽃이 뽑혀서 팔월 땡볕에 늘어졌다.
"어뗘? 촌사람 노릇허기 원만허신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찡그러뜨리면서 사람좋은 웃음을 흘리는데 어쩌면 친정엄마를 닮은것도 같다. 경숙은 문득 가슴 아래가 눅눅해졌다.
"보시다시피 뭐 그렇지유."
"요즘은 다들 사람쓰기 힘들구 구찮응게 이런 묵정밭이야 누가 쳐다를 보나. 담장밑이 한 뼘만 양지가 나두 콩을 심구 수수를 묻구 그렸는디 나도 구찮어 인전. 젊은네가 그려두 신퉁허네"
경숙은 비싯 웃어보이며 땀을 닦았다.
일이랍시고 종일 뭉기적거리기는 하는데 도통 끝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런데다 이곳에 와서 유일하게 따뜻한 눈길을 주는 호봉엄마의 칭찬을 듣자니 고맙기보다 민망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항꾼이 허지 말구 츤츤히 혀. 아무리 종지보새기(종지접시)만헌 땅이 난 풀이라고 혀두 지가 버틴 땅심이 있는디 한 손이 다 구정날거라구? 오래 안 쓴 땅이라 더 헐거여. 워낙이 이런 땅이야 멫 마지기 읍써져두 표시두 안날 땅부자들이라 잊어먹구 사는지 알었지."
안그래도 아직도 손에 익숙치 않은 호미질로 손바닥이 화끈거리고 종아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경숙은 딱히 뭐라고 대답도 못하고 또 비식 웃고만 말았다.
호봉엄마는 팔월 뙤약볕에 빨갛게 달아오른 경숙의 팔뚝을 안스럽게 보다가 혀를 찼다.
저사람이 저 나이까지 비오듯 땀을 흘리며 밭맬 일이 있었을까.
남편이 회사 공금을 말아먹고 도망을 쳤다더니, 몸도 못가누는 딸네미 업고 들어온 시집살이가 오죽이나 자심할까.
집앞 우물가에 번듯한 밭을 두고 다 먹지도 못할거면서, 굳이 산아래 버려두고 쓰레기나 태울 때 쓰던 묵정밭을 이 삼복더위에 매라는 시어미 속이 들여다보여서 미운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받아 올라오다가 꿀꺽 삼키고 말았다.
짐작하고 속이 아픈 것보다, 옆에서 걱정이랍시고 얹어주는 말이 더 모질까봐서였다.
비슷하게 신혼을 시작한 보람이 할머니가 손끝에 물도 안적시면서 다른 사람 손에 업혀 나이를 먹더니 배우도 못한 시집살이 하나는 톡톡하게 시키는 것이 밉살이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눈을 찡그리는 경숙을 보고는
"그려, 대충 걷구 점심먹구는 한잠 자라. 비름 뽑다가 자네 기운 먼저 다 뽑겄다. 풀뽑다 하루 살구 말려?"
쯧쯧 혀를 차며 멀어지는 호봉엄마의 치맛자락을 보다 경숙은 한숨을 쉬었다.
밭고랑 사이에 열기가 어른어른 했다.
목덜미가 쏘인 듯이 따끔거렸다.
슬리퍼 속이 땀으로 미끈거려서 자칫하면 훌떡 벗겨졌다.
십 년만이라든가 백 년만이라든가 독하게 더운 여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