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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돌말사람들

석양에 홀로 서서 - 6

by 소금눈물 2011. 11. 17.

 

02/12/2004 02:17 pm공개조회수 0 3


장터 스마일 분식에서 쫄면을 나누어 먹고 은숙과 철만은 나란히 걸었다.
은숙의 집은 철만의 집과 정 반대인 안뜰말, 내동리였지만 은숙도 집에 가란 소리가 없었고 철만도 가노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해거름이 기웃해서도 말복 더위는 식지가 않았다.
볏모가지가 올라온 논에서 무엇이 후다닥 스치는 소리가 났고, 이따금 안뜰말 뒷산에서 쩡쩡 우는 소리가 났다. 일찍 나온 소쩍새인가...

지워지기 시작한 그림자 하나만큼의 사이를 두고 은숙이 앞서고 철만은 투덕투덕 쫓아가는 꼴이었다.
목덜미까지 내려온 단발머리를 이따금 손가락으로 훔치며 또박도박 걷던 은숙이, 풀숲에서 무엇이 튀어오르면 잠깐 섰다가 발을 옮기고, 철만도 덩달아 발을 멈추고 개구리를 처음 본 것처럼 달아난 풀더미에 한눈팔다 또 서둘러 쫓아갔다.

더운 저녁이었다.
장터를 지나 공덕비가 늘어선 안뜰말 동구까지 왔을때 은숙의 앞으로 반짝 반딧불이 하나가 솟아올랐다.
은숙은 아~! 하고 짧게 감탄사를 뱉으며 사라지는 반딧불이를 보았다.
하나가 나타나자 연이어 두엇이 따라 올라왔다.
은숙의 그림자는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날리는 바람결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잠깐 앉았다 갈래?"

긴 침묵을 깨고 은숙이 돌아보았다.
철만은 고개를 끄덕이다, 자기의 고갯짓이 안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은숙은 철만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길 옆 수로쪽 언덕으로 올라갔다.
철만도 따라서 올라갔다.

검은 짐승의 등처럼 소리없이 흘러가던 물길이 어디쯤에서 어깨를 부딪는지 슈르륵.. 하며 숨을 토해내다 다시 잠잠해졌다.
깊은 물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둠 속에서는 더 보이지 않는다.

희고 둥근달이 뒷산쪽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철만은 치마 밑으로 뻗은 그녀의 희디 흰 다리가 어둠속에서 부옇게 떠오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정작 쉬어가자 말을 해 놓고도 은숙은 말을 잊은 채 멍하니 수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철만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묵묵하게 기슭을 부딪는 물소리만 헤고 있었다.
바람에 불 때마다 은숙의 머리에서 옅은 땀냄새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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