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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돌말사람들

만추 3

by 소금눈물 2011. 11. 17.

 

01/19/2004 11:53 pm공개조회수 0 2



" 하늘 아래 달랑 둘 뿐인 성제가 워찌 그리 달브든지 하나는 똑 놀부 성만치로 내 안 먹을 누룽개도 남이 입이 들어가 있으먼 뺏어서 패대기를 칠 심보구, 나머지 하나는 사흘 굶다가 얻어든 개떡두 옳게 온으루 못 먹는 반펜이여."

한숨 섞어 어머니가 노상 달고 다니던 타령이었다.

할어버지 대만 해도 하루를 걸어도 박가네 땅을 못 벗어난다던 부농이었다.
유학이라고 서울에 보냈더니 공부는 뒷전이고 마작에 기생질에 일찌감치 할아버지의 눈에 났다.
등록금이라고 논 팔아 보내면 그 날로 기생첩 문간으로 달음박질이었고 학교는 이태를 못다니고 말았다.
이대로 가다가 가문 닫고 말겠다고 한 재산 넉넉하게 떼어서 처가가 있는 은산으로 보내고 집안 문서는 둘째인 아버지에게 물려주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쳐진 살림이라 해도 남 눈치 보고 살만한 재산도 아니었는데 버릇 못 버린 기생질에 마작까지, 삼 년을 안 넘기고 말아먹고 처자식도 모르게 서울로 날랐던 것이 육이오가 나던 해였단다.

가을, 인민군과 함께 휩쓸려 고향에 모습을 드러냈던 큰아버지는 중뿔난 벼슬이라고 인민위원장 완장을 달고 다니면서 몹쓸짓을 무단히도 많이 했다.
한 집 건너 삼촌이고 조카인 씨족마을에서 생목숨 여럿이 요절났다.

수복이 되면서 몰매 맞아 죽기 직전에 도망한 큰아버지의 죄를 동생인 아버지가 옴팡 뒤집어 썼다.
피난이라고 사돈 동네로 피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모질고 극악스런 형을 둔 덕분에 목숨만 부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집안이건 뭐건 돌볼 생각을 안했다.

"원체가 손 끝에 흙 묻혀가며 산 이도 아니었지만 정네미가 떨어졌던 거시여. 몸 써서 일 안혀두 먹구 살만은 헝게 핑계 잘 잡었지 머. 성이나 동생이나 닮을 것이 어쪄 그 질 뿐이든지....."

그 많았다던 재산을 손가락 사이 물 빠져나가듯이 녹인 아버지를 푸념하던 엄마였다.
돈과 시간이 많은 이에게 세상에 찾아드는 사연도 많고 풀어보실 포부도 덩달아 컸다.
호기롭던 아버지가 세상 넉넉하게 다 살고 돌아가신 게 내가 열 세살 되던 해였다.

"그려두 지 집이는 뭔 말을 으띃게 혔는지 은젠가 호철이가 술을 잔뜩 쳐먹구 나헌티 대들드라.
지 아부지가 글쎄 늬 애비땜이 억울하게 당헌 중 아는 거여.
늬 아부지가 등 띠밀어서 동네 사람을 선동혀서 몰매루 매타작을 당허구 장독으루다가 죽었다구.

허이구 시상이나. 사람이 으째 죽을 때꺼정 깨깟하게 가질 못허구 그러냐.
헌 짓으루 봐서는 은산 중말서 그냥 맞어죽어두 헐 말 읎지.
그이 땜이 한날 지사 지내는 집이 한 두집이가니? 참말루 동기간이 헐 소리는 아니다만 참 가는 세월이 부처님이지 뭐. 다 지나니께 잊어먹구 그러구 살지 히유 "

" 으째 오빠는 그런 소리를 했을까나? 벌써 언제쩍 일인디......."

" 은젠가 걔가 사우딘가를 갈라구 혔나부드라. 왜 한 참 전이 그랬잖여. 중동 바람 불 때. 즈 애비한티 풍 떠는 것만 그대루 배운 애가 무슨 맘이 들었는지 글루 갈라구 혔나벼. 여자두 읎구 술두 읎다는 딩게 한 멫 년 착실히 벌어 나오면사 한 집안은 그럭저럭 일어날만 혔지. 걔가 그런 심뽀루 갈라구 혔을까는 모르겄다만. 근디 여권인가 뭔가를 낼라구 알아보는디 뻘건 줄이 그섰드랴. "

" 육이오때 고향서 그런 걸 어째 알구?"

" 누가 말혔겄냐. 늬 큰엄니지. 하이구 참 그려두 새끼헌티는 어지간히 좋은 애비루 만들구 싶었내비다. 허구헌 날 매타작을 당허구 부엌이서 쭈그려 울던 때가 어제 같은디.....늬 아부지두 성이 워낙에 숭악허게 일을 저질렀응게 혹시라두 뻘건 물 들은 사람이라는 말 들을까비 자게 딴에는 그렇키 노력헌다구 헝게 그 모냥여. 어줍잖게 설레발을 치다가 가진 거 몽창 날리구 결국에는 내 팔자만 요 모냥으루 만들구, 아이구 박스방~! 삼년만 더 살았으먼 내가 먼저 복장 터져서 관 짜러 갔을 것이다."

집안의 흉사를 딸 한테 말 한 것이 그래도 맘에 걸리는지 영 개운찮아 하던 엄마였다.
연좌제가 폐지되었다고는 해도 읍내엘 가도 부여경찰서쪽으로는 발걸음도 하지 않던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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