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명/돌말사람들

장미원 4

by 소금눈물 2011. 11. 17.

 

01/06/2004 04:58 pm공개조회수 0 1


서기가 저리 유세니 면장이라도 될라치면 종 세워서 나들이할 놈이라고 혀를 차며 따라나섰다.
한 나절을 비워도 누가 들를 것 같지도 않고 올 사람이면 어차피 기다릴 일이다 싶어서 연장통도 단단히 챙겼다.

한낮인데도 날이 더워서 그런지 골목은 텅 비어 있었다.
끓어오르는 열기가 아지랭이처럼 아스팔트로 올라와 딛는 신발 밑까지 후끈했다.
서울식당 검둥이가 혀를 빼물고 나무그늘 아래서 헐떡이고 있었다.

"날 잘 잡었네. 누구 잡을라구 이런날 지붕 보쟈?"
"그런 소리 허덜말어. 읍내 아니라 큰마실만 가두 기술자 있어. 한 푼이라두 아는 얼굴이 주구 싶어 그런 걸 몰라?"

던지는 말꼴마다 밉살이었다.
배추씨라도 던질 밭뙤기 하나 없는 신세니 영농자금 대출 받을 일도 없고 면사무소가 가까울 리도 없었는데 그래도 관서라고 들락거리기에는 개운찮은 곳이었다.

면사무소는 이전얘기가 나온게 벌써 사 오년은 되었다.
다른 동네 면사무소는 입구부터 반지르르 가꾸어 놓았는데 마을돈을 털어서 지을 것도 아니면서 어찌 이리 차일피일 말만 까먹었는지 낡고 추레한 것이 마을 꼴과 꼭 닮았다.
지난 회기의 김면장이 얼마를 해먹고 날랐다던가. 무성한 뒷말을 키우더니 뭔가 있긴 있던 이야긴지 영 쉬쉬하는 것이 대충 수리를 해 가며 지내야 할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서기가 생색낼 게 아니라 떡시루 오갈 때 날아든 고물깨나 착실히 얻어먹었는지 저리 설레발을 치며 수리하자 나설 사람도 아니었다.

면사무소에 도착해서 사다리를 가져다 걸쳐놓고 안팎으로 돌아보니 손 볼 곳은 땅엣것이 더 많아보였다.
국기계양대의 한쪽도 시멘트가 다 부서져 내리고 있었고 현관 유리 선팅을 보니 속으로 금이 적잖이 갔다.

이런 꼴이면 지붕 아니라 배관도 제대로 신경쓰는 사람들이 아닐 터였고 보일러 일이라도 얻어걸리지 않을까 싶어 그래도 나선 발이 다행이다 싶었다.

"한번 봐. 조만간이 근물을 대대적으루 손보야니께 크게 키울 것은 읎구 장마비나 그시게 해줘"

분명히 수리비는 제대로 할당되었을텐데 지서기 하는 수작이 어느 귀퉁이를 잘라먹자는 심산인지도 몰랐다.

" 보야지. 보구 나서 떠들 말이지. 쓰러지는 지붕이 작대기를 걸치드래두 당장 자빠지게는 헐 수 있간디? 뚜껑을 열어봐야 헐 소링게"
"호미질 헐 고랑허구 가래질 헐 고랑이는 우리두 알어"
"나 안 헐라네! 지서기가 히봐!"

큰놈(大兄)이 걸려서 어쩔수 없이 뭉기작거리다 나온 터에 턱 밑에서 끝까지 깨질거리는 지서기에게 열이 치받쳤다.

연장통을 탁 내려놓는 장사장 얼굴을 보고도 별달리 무안해 하는 기색도 없이 지서기는 니밀니밀 웃었다.

"승질 급허기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장사장 계산 속이야 몰르나? 증헌 예산이루 다 나오게 되어 있는디 헛배부를 일두 읎구 너머 꼼꼼허게 보다가 일 키우지나 말란 소리지. 조만간이 새로 짓는다니께? 부지까장 맡아놨는디 머하러 흔 집이다 돈 들일라구 헐 거라구? "

'그룹명 > 돌말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미원 -마지막회  (0) 2011.11.17
장미원 5  (0) 2011.11.17
장미원 4  (0) 2011.11.17
장미원 3  (0) 2011.11.17
장미원 2  (0) 201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