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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돌말사람들

그사람 박봉찬 전 8

by 소금눈물 2011. 11. 17.

 

12/10/2003 08:26 pm공개조회수 0 4




"워느니 날 잘 잡었다. 그려, 너는 어디가 워치게 갠찮여서 너믜 서방헌티 기웃거리는지 오늘 좀 보자 이년아, 오늘 션찮은 여편네헌티 맛좀 비어주라"

"악! 그려, 나도 뭔 죄가 있어서 백주 대낮이 이 봉변을 당허는지 좀 알어봅시다. 거기는 웨 잡어~! 무식허니 남는 것이 심밖에 읎응께 심자랑 헐라구 날 잡었소? 놔유 놔~!"

"놓기는 장기돌이냐 이년아~! 아 맛좀 비어줘! 니년 자랑헌 갠찮은 맛좀 비어줘~!"



또 무엇이 우르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두 여자가 엉켜서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삼년묵은 새둥지처럼 제멋대로 풀어헤쳐진 머리를 하고 저고리 옷깃은 다 뜯어진 젋은 여자와, 김칫국물을 뒤집어 썼는지 앞자락이 시뻘겋게 번진 호봉이 엄마였다.

두 여자는 비가 지나간 진창바닥에 한덩어리로 뒹굴어서 머리채를 잡았다 놓치고 치마허리가 다 드러나는 줄도 모르고 발버둥질을 쳤다.

나는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서울식당 앞으로 달려갔다.
어느새 장마당의 장꾼들과 장보러 온 이들이 우르르 모여 있었다.

"누구랴? 돌말 봉찬이 안사람 아닌가베? 젊은 것은 백마강다방 레지같구만"

튀밥통을 돌리던 이가 밀짚모자를 눌러쓴 장돌뱅이 신발장수에게 물었다.

"아따, 자네가 워쪄 백마강다방 레지를 다 알어. 튀밥 튈 쌀섬이나 저년 앞지락에 쏫아 부섰구만?"

" 뭔 소리랴. 먹구 살자구 벌이는 튀밥통을 부여장이선 거기 앞이다 벌여 놓응게 들락날락 허는 꼴을 본 거지, 근디 워쩌자구 저것이 여기서 지랄이여?"

"히히, 밀린 오이상값 받을라구 저것두 장날 받어서 나온게비지. 자네 따라온 거 아녀?"

"에끼 이 사람. 허긴 저년 응뎅이에 넘어간 사내꼭지들 줄 시우라먼 아마두 여기두 동서가 즉잖을겨 히히"

여인네들은 진창을 구르고 악다구니를 치고 난장판이 벌어졌는데 누구하나 뭐라는 이도 없이 빙 둘러서서 짐짓 혀를 차면서도 한구경났다는 표정들이었다.
튀밥 장사꾼은 새 쌀을 넣을 생각도 없이 한바탕 대포를 쏘고 난 후엔 아예 자리를 잡은 듯 히죽거리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들고나온 강아지를 사려는 이는 없고, 조무래기 아이들만 몰려들어 만져대는 통에 성화가 받친 아랫말 정희 할머니만 혼자서 손사래를 치며 사람들을 불렀지만 누구하나 눈길을 주는 이가 없었다.

"하이고 고년 속살 좀 보라지, 봉찬이 마누라가 버끔물고 달려들게도 생겼네"

과연, 젊은 여인은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미인이었다.
함부로 흩어져서 머리채는 꼴사나워졌지만, 궂은 일을 해 보지 않아 그런지 허리선은 미끈했고 사나운 뙤약볕에 밭매기를 해 볼일 또한 없었을 터라 얼굴빛도 사뭇 고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봉이 엄마의 우악스런 손아귀에 치맛단은 다 튿어져 허리춤이 반은 드러났고 블라우스 단추도 투두둑 떨어져 나가서 때아니게 눈호사를 만난 중년의 장꾼들만 입이 벌어졌다.

호봉이 엄마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새마을 사업이 다녀간 뽀글뽀글 파마머리는 짚수세미 꼴로 변해 있었고 신발짝이며 저고리 고름이며는 날아가버린지 오래였다.

"못살겄네 증말~! 이니들이 웨 너믜 영업집에 와서들 이랴~! 밥 잘처먹었으문 제깍제깍 가먼 되지 장날이 날 받었슈? 뭔 심사루 이랴? 아줌니 남편 얼굴 깎을라구 작정을 혔슈? 아즘니 승질머리를 봉게 나라도 딴눈 팔겄어 워째 이랴~!"

젊은 여자와 나이든 여자가 위쪽으로 아랫쪽으로 위치가 서너번을 바뀌어가며 들썩일동안 드디어 서울 식당 안쪽에서 주인네가 달려나왔다.

허리춤에 물바가지를 들고 여차하면 쏟아붓기라도 할 기세였지만 아는 얼굴이라 차마 물바가지는 못 던지고 고함만 고래고래 질렀다.

"아자씨~ 내 오늘 이년 내비 안둘뀨. 워디가 월매나 잘나서 너믜 서방 안짝까지 무시허구 안마당으루 들오는지 내 오늘 지대루 알아볼뀨 "

"너믜 말을 대신허구 그러네. 아니 내가 뭔 죄이가 있다구 백주대낮에 머리채를 잡어 잡기럴. 동무가 산바람좀 씨자구 혀서 나왔다가 즘심먹으러 밥집이 들어갔더니 난데없이 머리채부터 잡은 것이 누군디 그려? 그러키 잘났슈? 아나 줘두 안가질 중늙은이 서방, 왜 이랴? 못 지키먼 등신같은 자게를 탓헐 일이지 웨 날더러 그랴?"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분위기가 삽시간에 달라졌다.
젊은 여자의 난데없는 봉변에 반은 혀를 차면서도 은근히 동정의 눈길로 던지던 사람들의 표정이 싸늘해진 것이었다.

"쯧쯧. 배운 바 읎이 몸으루 밥 사는 것들이지만 말이 웨 저려. 줘두 안 가질 중늙은이를 웨 건디려. 그러구 여기가 어디라구 증말루 지네 동네두 아닌 디서 안사람헌티 악다구니를 쳐. 새파랗게 젊은 년이 싸가지가 드럽구먼"

모여든 사람 틈에서 고개를 빼고 있던 돌모루 상회 아줌마가 싸늘하게 뱉었다.

그러자 입벌리고 흐뭇하게 그 광경을 보던 상회 바깥 아저씨도 슬그머니 엉덩이를 뺐고 눈치를 보면서 남정네들이 하나 둘씩 물러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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