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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이 쓸쓸한 가을에 난희가 씁니다..

by 소금눈물 2011. 11. 16.

이 쓸쓸한 가을에 난희가 씁니다..

07/22/2005 09:35 am공개조회수 1 0




오늘 그 바닷가엘 다녀왔습니다
포청에 나가니 비호대장께서 봇짐을 챙기고 계시기에, 소녀 인사를 드렸습니다..

소녀의 손에 들린 소쿠리를 보고 맘을 짐작했음인지...말 한필을 내어줍니다..

평안하시지요.
평안하시지요.
옥이도, 아버님도 다 뵈오셨겠지요.
거기에선 다들 평안하지요

저희도..
잘 지냅니다..
백부장께선 둘째를 얻으셨습니다. 아주 귀여운 딸입니다.
마포교는 지난 여름부터 우포청으로 갔습니다. 내내 이부장님과 투닥거리더니 기어이는 그리로 가셨지요. 허나 이틀 걸러 좌포청 마루에 앉아게시다 아버님께 꾸지람을 듣고 또 달려갑니다. 그 걸음이야 나으리도 아시지요....나룻터 새 주막에 맘을 연 아낙이 있다 들었습니다...말씀은 아니하셔도 얼굴이 많이 밝아보입니다..

아버님께선...아직도 좌포청에 계십니다.
전하께서 훈련도장으로 부르셨으나, 아버님께선 그냥 여기가 좋다셨답니다...

그 바닷가가 한성에서 그리 먼지를 몰랐습니다. 나으리 보내드리던 날은 무슨 정신으로 다녀왔는지 기억에도 없습니다.
돌아와서 죽음같은 잠을 며칠이나 잤다 합니다....

후원에 달이 밝습니다. 나으리께서 제게 마지막으로 오신 날도 저러했던가요.
제게 그리 미안하셨습니까. 그리 미안하셨다면 그러실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으리께서 처음 좌포청에 오셨을때, 소녀 너무 어려 나으리만 보았습니다. 나으리의 뒤에 어떤 아이가 서 있는지를...저는 보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조금만 눈이 깊었더라면.....그래서 나으리께 맘을 놓기전에 그 아이를 볼 수 있었더라면...제가 나으리를 어렵게 하진 않았을 겁니다..

촛불을 내리고 달빛에만 기대 수를 놓습니다.
나으리께 해 드리고 싶었던 게 참으로 많았습니다.
수련장에서 나으리 흘리시는 땀 방울을 본 날.....소녀는 모란꽃을 수놓았었습니다. 나으리 마음에 어떤 꽃이 먼저 피었는지를 저는 몰랐습니다..
나으리께 그 수건을 보이기도 전에, 그때 비로소 소녀는 나으리의 마음 한자락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비가 퍼붓던 수련장....나으리의 땀을 닦아드릴 수 있는 사람이 제가 아니란 걸..그날..알았습니다..

저를 그저 스쳐지나가셨지요.. 나으리의 마음은 이미 그 아이를 향하고 있어, 오직 그 아이를 위해서만 미소를 지을 수 있고 눈물을 보일 수가 있어, 그 빗속에 소녀가 서 있는 것을, 그리 오래 지켜보고 있던 것을...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지나칠 수가 있으셨을 겁니다...

한번 기운 맘이 어디로 가리이까. 피우기 시작한 꽃을 또 어디에 옮기리까...
소녀가 지은 옷을 마다시고 그리 차갑게 돌아서면서..어찌 그리 무심하셨습니까..그 밤 .. 소녀 참 많이 울었습니다...그냥 받으셨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입지 아니하셔도 , 제가 지은 맘이 나으리의 방 어느곳에 자리해 저 대신 나으리의 모습을 지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바닷가에서...차를 올렸습니다. 나으리의 마음이 이제 이 바다에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그래도 마지막 나으리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은 거기밖에 없기에..소녀가 올리는 작설차 한 잔..올리고 싶었습니다...
지난 봄내..따로 갈무리해 덖은 것입니다. 아버님께도 올리지 않은 차였습니다...

바람이 참 좋았습니다.
파도도 일지 않는 바다였습니다.
나으리는 참 좋은 곳을 택하셨습니다...나으리 누우셨던 그 해변에...새로 푸새를 올린 다홍치마가 젖는 것도 모르고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생각나는 것이 아직도 많습니다. 나으리께서 한번도 입지 못하셨던 소녀가 지은 두루마기, 제가 다시 가져왔습니다. 한번도 나으리의 손길이 닿지 못했을 이 옷이 꼭 저의 신세와 같아. 옷을 가져온 날은....밤이 길었습니다..
나으리 차 드실때 한번도 소녀를 보지 않으셨지요..
그리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될 일이었습니다. 소녀가 아무리 불러도 나으리의 마음에 닿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그러면서도 마음을 접지 못한 건...소녀가 어리석었던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노력하면 닿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 어린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선 아무도 나으리의 이름을 말하는 이가 없습니다.
이부장께서도 비호대를 훈련시키면서도 한번도 나으리의 이름을 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소녀..... 이부장께서 마굿간으로 왜 그리 자주 가시는지. 그분의 눈가가 어찌 그리 더 깊어졌는지...ㅡ소녀는 또 알것 같습니다..

후원, 연못가에서 넋을 놓고 있다가 풀잎을 씹으시는 모습을 봅니다. 말이 없는 그 분 가슴에 무슨 쓸쓸한 바람이 다녀가는지..소녀 알 것도 같습니다..

다시 여쭙니다...다들 편안하시지요
옥이는 이제 울지 않는지요. 다시 나으리를 힘들게 않겠지요

그리운 이들...참 그립습니다..소녀. 그 바다에서 처음으로 나으리 그립다 했습니다..

홀연히 떠나신 그 자리 너무 커서....다시 바라볼 나무 없을 듯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야 겠지요. 또 누군가 소녀의 마음으로 걸어들어올 지도 모르겠지요..아직은 아니지만..아직은 아니지만..


인사 여쭙니다.
오래 찾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관직을 내 놓으실듯 합니다.
상한 마음이 깊으셔선지 부쩍 기력이 없으십니다.
차를 나눌 벗도 많지 않음을 아시겠지요. 새벽에 들리는 기침소리가 날로 깊어져 걱정이 됩니다..

이곳은 다들 무고합니다.
...저흰 나으리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으리.
그런데..


다들...
다들...

잘 지내고 있습니까....
가끔..아주 가끔....모두가..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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