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에미 녹수에 와 너를 부른다
.. 너를 여기에 묻고 늙은 어미 한숨이나 잤겠느냐. 엄동이라 추울 것이며 염천이라 더운 줄을 알았겠느냐. 어느 골짜기에 발이라도 묻었는지, 몹쓸 짐승이 박속같은 내 새끼 상케 했는지..내 어찌 잠을 자랴. 내 어찌 한술이나 밥을 먹었으랴..
부모는 죽어 산에 묻고, 자식은 죽어 부모가슴에 묻는단다.
내 새끼...생각하면 피눈물이 나는 내 새끼...
토포를 나간다고 에미에게 인사하더니
훌쩍 돌아와 못 찧은 보리를 찧어주겠다더니.
어디에 있느냐..
어디로 갔느냐..
너를 뱃속에 넣고 일곱달만에 네 애비가 세상을 버렸을때...입이 붙어 나는 못 울었다. 천지가 붙어 버린 듯 세상이 다 캄캄하고 석달 열흘 큰비만 솟구치듯 했다.
내가 어찌 살았겠느냐.. 내가 어찌 그 막막한 세월을 살아왔겠느냐
너 때문이 아니었느냐.. 꽃같은 내 새끼, 솜털같은 내 새끼 아니었겠느냐..
따순 쌀밥 한 번 못 멕이고, 명주 솜옷 한 번 못 해입이고, 새벽부터 논밭 돌보고, 부역을 하고, 나이가 차 포청에 나가 녹을 입고...생인 손 아픈 듯이 에미 돌아보며 그리 살더니...
네가 그리 가려고, 그리 빨리 가려고 평생 할 자식맘을 그리 내게 보였더냐....내가 네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리 하늘도 보지 못할 벌을 내개 준다는 말이냐..
아가.. 성례도 못 시키고 보낸 내 아들아..
에미 가고..누가 있어 너를 기억할 것이며, 네 제삿날을 누가 찬물 한 그릇 올려줄 것이냐. 한 점 혈육도 없이, 사는 기쁨도 없이 허위허위 그리 늙은 에미 하나 바라보고 살다간 내 아들아..
바람이 불면 내 새끼 발 소린가, 비가 오면 내 새끼 기척인가...창졸간에 눈도 못 감고 너를 기다린다...수릿재 논은 누가 있어 돌볼 것이며, 늙은 어미 길쌈을 한 들 누가 있어 이 옷을 입어 줄 것이냐..
어느 놈의 모진 칼날이, 두부 속같은 내 새끼 몸을 헤집었더란 말이냐. 하늘에 대고 그 간을 씹어 시원찮을 어느 놈들이 내 새끼 피를 땅에 쏟았단 말이냐..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눈을 감아도 감은 것이 못되리라...
너의 육신 한 조각 거두지 못하여...부질없는 에미 시시로 와 이 골짝을 헤메나, 어찌 이리 이 산이 저 산 같고, 저 골짝이 이 골짝 같아,...막막한 에미 쓰러져 울 뿐이로다....
큰 기침 내던 사람들도 부질없는 세상이라 하더라만, 피지도 못하고 간 내 새끼 한은 어느 뉘가 있어 일러주리. 누가 있어 내 새끼 눈물을 닦고, 구멍이 난 이 늙은 에미 가슴을 메워주리..
한수의 저 강물이 에미 눈물이고, 이 소요산 붉은 놀이 에미 피로다...
아가 내 새끼야.
이 모진 세월...에미 어찌 혼자 살아가랴. 너 없이 에미 어찌 이 세상 건너가랴...
한 날이 천 날 같고, 천 날이 하루 같아 날마다 생각하노니 꽃같은 내 새끼 옆에 갈 꿈이로다....
장작같은 내 손으로, 솜털 같은 내 새끼 얼굴좀 보듬어 보자.
고랑 같은 에미 볼에, 두부 같은 내 새끼 가슴좀 부벼 보자..
아가 ...내 새끼야
어디 가서 너를 찾으랴...숨이 막히고 가슴이 터지는 늙은 에미
날마다 너를 찾아 맨발로 헤멘다..
내 새끼야... 내 새끼야...
어디에 살점 하나라도, 어디에 혼 한 자락이라도....보여다오..보여다오 내 새끼야..
내 꽃같은 아가....솜털 같은 우리 아가...
--판화.. 케테 콜비츠 <과부>
'그룹명 > 그녀는 다모폐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을 부르지 못합니다 (0) | 2011.11.13 |
---|---|
황보 윤..그대를 차마 보내지 못하여... (0) | 2011.11.13 |
아침부터 병택이 고놈 난리를 치더니~! (0) | 2011.11.13 |
당신 그럴 줄 알았어~!!! (0) | 2011.11.13 |
죄 많은 애비 네게 쓴다 치오야.. (0) | 2011.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