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ㅡ.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김종길 <성탄제>
내게 산수유는, 달아오른 어린 아들의 이맛전에 얹히는 그 서늘한 아버지의 손이었다.
산수유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 꽃의 이미지는 그렇게 붉었다.
남선공원 아래 살 때에, 산공원에 산수유꽃이 피면 그 열매가 어떻게 맺히는지 못내 궁금해서 조바심을 내며 그것이 익기만을 기다렸다.
열매는 늦게 익었다.
꽃이 지고도, 한참... 보리수열매같은 그것이 조그맣게 맺혀 조금씩 단단해지기를 또 한참...
봄은 가고 여름도 지나가고 그렇게 가을이 깊도록 산수유는 익지 않았다.
짙푸른 빛깔이 조금씩 엷어지며 물이 들기 시작하는 걸, 끝내 다 익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이사를 해야했다.
화엄사를 나오면서 가까이에 있는 마을에 산수유축제가 한창이라는 말에 들러보기로 한다.

딱히 어디랄 것도 없이 이 일대가 전부 산수유마을이라는데
꽃이 워낙 소담하게 풍성한 것이 아니다보니 멀리서 보면 노랑풀감을 풀어놓은 것 처럼 아련하다.
아마도 산수유꽃의 매력은 이런 것인가보다.
요염하지 않고 순박한 새댁의 노랑 저고리같다.
한발 멀리서 바라보는 마을 안 쪽이 고요했다.
번잡스레 오고가는 길손들이 그 평화를 깨뜨릴까봐 문득 미안해진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



어째 사진이 하나같이 다 이따윈지 모르겠다 -_-;;;

봄들녘이다.
파릇파릇 새싹이 올라오는 논이 보기만 해도 포근포근하다.
따뜻한 봄볕을 등으로 받으며, 쪼그리고 앉아 냉이, 달래를 캐고 싶다.
허리를 낮추고 돌아앉은 산수유가 구름같다.

봄이다.
바야흐로.
어쩌자고.
저 홀로 노곤하게 흘러가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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