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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강요배

by 소금눈물 201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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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사랑해서 꽃이 되어버린 나르키소스.
그를 사랑했던 가여운 요정 에코는 메아리가 되었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을 비추는 물을 바라본다. 다함없는 그리움과 갈망에 타는 가슴으로.
자신에게 닿는 길을 그는 알지 못하고 그 사랑을 어떻게 구할지도 몰랐다.
타는듯한 그 갈망의 대상이 그 자신인 줄을 그는 몰랐다.

강요배는 제주의 작가이다.
바람과 흙과 그리고 아픈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있는 그 땅의 작가이다.
열 개 남짓한 짙푸른 잎새 사이로 목 가는 수선이 한송이 피었다.
검은 대지를 배경으로 작은 등불 같다. 고개숙인 그 꽃이 어두운 배경에 한점 희망같고 불빛 같다.
시선을 끌어올리는 이 갸날픈 꽃 한송이가 가진 힘을 보아라.
관조하는 듯, 수줍은 듯 피었지만 잎새의 힘은 완강하다.
이 꽃은 나약하지 않다.
나르키소스의 애절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또 그가 가진 그 사랑의 힘을 감추지 않는다.

강요배의 그림은(그림편지 호박꽃 참조) 이 땅의 기운 아래서 더할 수 없는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 그 그림들이 가지는 힘줄 굳은 한을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꽃 한송이가 다만 꽃 한송이가 아니고 이 땅의 피어린 역사를 바라보게 하는 손짓으로 핀다.
아름답다.
소리쳐 울부짖는 구호가 아닌데도 이처럼 심지굳은 힘이 느껴지니 더 아름답다.
부드러운 직선이라 했던가. 부드러운 곡선의 힘도 역시 그것만큼이나 강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