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기억에 겨울 햇살이 가장 따뜻한 곳은, 굴뚝이 있는 토담벽과 김장독을 묻은 짚치마, 그리고 볏짚을 쌓아놓은 낟가리다.
그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은 동네 한 중간 논바닥에 쌓아놓은 낟가리 아래였다.
칼바람이 볼때기를 스치던 말던 겨울 방학을 시작하자마 연을 만들고 썰매를 다듬느라 하루가 정신없이 가는 조무라기들이, 의례 모여서 누런 코를 훔치던 곳이었다.
눈이 내린 다음날은 썰매를 타기가 어려웠다.
그 눈이 얼핏 녹아 꽁꽁 얼어야 비로소 썰매가 잘 나갔고, 하루해가 다 저물도록 시린 발을 굴러가며 방학을 보냈다.
다섯살이나 차이가 나는 바로 위 오빠는, 내가 동동거리고 쫓아다닐 즈음엔 벌써 사춘기에 들어서고 있어서 어린 누이가 귀찮기만 했고, 나는 어쩌다 썰매 한번 얻어탈 수 있을까 기를 쓰고 쫓아다니다 설움도 참 많이 받았다. (오빠 미워~)
시시로 햇살이 닿는 모습이 달라지는 낟가리를 추적하듯 그린 모네의 그림 중에서, 나는 유독 이 그림이 참 좋다.
먼 구라파의 어떤 시골이 아니라, 내가 놀던 바로 고향을 만나기 때문이다.
비료푸대안에 퉁퉁하게 짚을 넣어 눈 썰매를 타다 하고한날 바지를 찢어먹어 빗자루로 얻어맞던 저녁도 있었고, 살얼음을 못보고 썰매를 놀리다 풍덩 빠져서 바짓가랑이에 진흙떡을 묻히고 와서 저녁도 못얻어먹고 울던 날도 그대로 있다.
여름한철, 고단한 수고를 한 농부도 저 낟가리를 흐뭇하게 쌓아놓고 겨울저녁을 따뜻하게 보내리라.
짧은 겨울 햇살이 눈위에 따뜻하게 떨어진다.
아....다들 어디로 갔나..
그 친구들. 낟가리 아래서 콧물을 훔치던 그 볼 빨간 어린 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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