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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연인의 마을

한심했어 윤미주

by 소금눈물 2011. 11. 10.





내 소원은 딱 하나였다.
신도의 내 땅, 그거 팔아서 멋진 병원 짓고 돈 많이 벌어서 멋진 남자한테 숑~ 시집가는 거.
윤미주 소원은 그거 뿐이었다.
지금이야 다니던 직장도 짤리고 우중충한 인생이 되어버렸지만.
죽어라 벌어서 그 땅도 찾고 시집도 삐까번쩍하게 가 줘야 하는데 후....

아니 그런데 이 좋은 술을 못 마신다는 사람이 있다.
생긴 건 바로 소주병으로 변신하게 생긴주제에.
술맛을 모르면 심심한 인생에 뭐 하고 친구 삼고 넘어갈라나 싶어.
흥! 폼만 잔뜩 잡을 줄 알았지, 엄살은 또 얼마나 심하던지.
등허리 용은 순 구라야.




앗!
옆집여자다.
백화점.

설마 저 여자도 나처럼 하릴없이 이력서 팔러다닐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일까.




나를 보는 표정이 언제나 하얗다.
원래 성격이 그렇게 차가운 걸까.
처음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는 웃는 얼굴이 이쁘다 싶었는데.
이쁜 얼굴에 환하게 웃으면 더 이쁠텐데 여자의 얼굴은 늘 굳어있고 슬퍼보인다.

아, 그렇군. 아이를 가졌다 했지.
그래서 신경이 날카로와졌을거야.

그런데 이상하다.
언제나 나는 이 여자 앞에서 주눅이 들어있다.
누구한테서도 져 본적 없는 윤미주, 이상하게 옆집여자 앞에서는 어렵다.
내가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 나를 꾸짖고 있는 것처럼...





- 설마 그걸 마시려는 건 아니죠?
- 설마는 늘 사람을 잡지요.

누구랑 말버릇이 똑같다.
어이없어 한 소리였는데 옆집여자의 얼굴이 굳어진다.




마주치는게 썩 달갑지는 않지만
저 여자도 오늘밤은 기분이 별로인 것 같다.





손님이 잘 드는 이쁜 빵집에,
6년간을 함께 해준, 눈치는 좀 없지만 속깊어 보이는
애인을 갖고 있는 여자.
줄래줄래 딸린 동생도 없고 사채빚으로 넘어가는 집도 없을테니
윤미주 신세에 비할 거가있을까마는
언제나 여자의 얼굴은 서늘하고 슬퍼보인다.
내가 저러고 다녔다면 청승맞다고 아버지한테 등짝을 맞았을거다.





딱히 할 말도 없긴 했지만 나를 보고 발딱 일어서는게 불편하다.





- 혼자 있고 싶어서 왔거든요..

아... 그래. 흠..




- 잠깐만요.
지난번에 매장 갔을때요, 급한 마음에 속이 끓어 내가 실수했어요.
꼭 사과하고 싶었어요.



- 늦었어요.
- 아..





그... 그런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여자는 빠르게 쏟아낸다.

- 미친년, 왜 나한테 지랄이야? 진짜 재수없다. 기막혀 죽겠네...

미친...지랄..
- 비듬샴푸 이름도 아니고 지금 이 여자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렇게 욕을 했다고. 속으로.
그러니 때늦은 사과는 받을 필요 없단다.
말문이 막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여자, 보기보다 솔직하고 더 차다. 아니 아주 뜨겁다.
너무 열이 올라 아주 차갑게 굳어버린 것처럼.
잔뜩 벼른 칼을 정통으로 내려치는 것처럼.

나에게 솔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단다.
그래, 그것도 맞는 소리다.




오지랍 넓은 거, 그거 병 아니냔다.
네가 뭔데 끼어드냐고.

나 뿐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세상에 무섭게 화를 내는 얼굴이었다.

오지랍,
그래 윤미주의 오지랍...




술은 늘 이래.
술탓이다.
하지 말아야 할 소리였어 정말.
네가 뭔데 아이 가진 걸 말하니 마니 주제넘게 떠든 걸까.

아이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잘들 알아서 얘기할 거라고.
웃긴다 윤미주.

그러게, 악마가 너무 바빠서 인간에게 갈 시간이 없을 때 대신 술을 보낸다 했다.
오늘 내가 깜빡 당한거야.
한심한 윤미주...

그런데 말이지.
그 말 하면서 나도 모르게 찌르르 아팠거든.
진짜 한심했던 건 그거였는데...
그 말을 꺼내는 내 입이, 내 가슴이 이상하게 정말 타는 것처럼 아팠는데
그 여자는 알았을까.

그거 감추려고 한 소리였는데...

몰랐겠지.
설마 그건 몰랐겠지...

겨울바람이 춥다.
별도 없는 하늘을 보자니 찬 밤바람이 고추처럼 맵다.
하마터면 너무 추워서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오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처 서너개를 더 비웠는데...
나 처럼 옆집 여자도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복도에 어리는 불이 오래 꺼지지 않았다.

밤이 깊어서
누군가 오래 복도에 서성이는 기척이 들렸다.

겨울밤은 참 많은 사람을 뒤척이게 하나보다.
누구에게나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슬픈 별들이 하나씩 있는 밤이었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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