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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매혹 -1

by 소금눈물 2021. 3. 22.

주술은 이루어지는 것과 이루어져야 하는 것의 구분을 전제로 한다. 즉 현실성과 가능성을 구분하고 서로 연결할 때 주술이 성립한다.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주술은 의식적 의지의 표현이다.

p. 26-27

결론적으로 우리는 동굴벽화의 주술적 성격을 통해 구석기인이 세계와 자신을 대상화하는 사고능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상화가 우연적,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주술이라는 체계를 통해 의식적 과정으로서 반복해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연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철학 이전의 사고가 아니라 이미 초보적이나마 철학적 사고체계를 갖고 있었다고 볼 수있다.

p.27

결국 윤리란 사회의 규율을 강제적하려고 만든 장치다. 그만큼 윤리의식은 사회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 곳에서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윤리의식이 필연적으로 생겨난다. 그런데 구석기인에게 공동체의 생존과 유지는 절대적이었다. 오히려 개인적 이해관계나 이기적 행위가 표출되기 어려운 조건에서 윤리의식은 더 강력하게 힘을 발휘한다. 다만 공동체사회, 특히 모계사회라는 사회관계의 특성을 반영하면서 구석기시대는 그 이후 시대와는 아주 다른 윤리관이 생긴다.

 

p. 44-45

 

농경은 문자의 발전을 낳는다. 농경은 세대를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농사 지식을 말이 아닌 문자를 통해 체계적으로 전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

 

p.58

 

수메르 신화든 그리스 신화든 공통적으로 인간의 고통을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점토판에 기록된 수메르 시 가운데는 고통의 불가피성을 얘기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나의 신이시여, 온 대지가 밝게 빛나는 날, 저의 날은 캄캄합니다. 눈물. 탄식. 분노 그리고 상심이 제 안에 상주하고, 고난은 오직 눈물만을 선택한 자와도 같이 저를 압도하고, 사악한 운명이 저를 움켜잡아, 저의 삶의 기운을 앗아가고, ... 훌륭한 현자들인 그들이 정직하고 바르게 말합니다. '죄없이 태어나는 아이는 없고 고래로 죄 없는 젊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라고."

 

p.77-78

 

여러 도시에 왕이 있게 되었을 때 대홍수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분산된 권력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즉 신이 통일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했음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대홍수는 세계 종말을 의미한다. 대홍수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구분된 새로운 세계이다. 그래서 대홍수 신화 대부분은 한두 사람만이 살아나고 모든 인간이 죽은다. 선택받은 한 사람이 대홍수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인물로 부각되는 논리다. 그 한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권력의 창시자다. 대홍수 신화는 현재의 권력이 기존 공동체의 확대가 강화가 아닌 새로운 권력 창조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p.93-94

 

 

(이집트)신화에 의하면 우주를 창조한 신은 '모든 것을 만들고 신들을 존재하게 만든' 프타 ptha다. 이집트 중심지 멤피스를 지배한 최고의 신으로, 만물의 창조자이고 모든 신 중 최고의 신이다. 프타는 건립자라는 의미로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한 건축가이며, 어떤 경로로 태어난 게 아니고 그냥 존재한다. 프타는 '자신을 심장으로 드러내는 존재, 그 혀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였다. 심장과 혀로 세상을 창조했는데, 모든 신들의 몸과 영혼에도 생명을 주었다.

 

이집트인에게 심장은 단순히 육체의 한 부분이 아니라 마음이나 정신과 같은 모든 영(靈)적인 것의 상징이었다. 또한 혀는 말을 나타낸다. 창조신화에 의하면 프타 신이 우주 개념을 생각해내어 명령을 내림으로써 우주가 형성되었다. 우주 창조는 개념의 현실화 과정이었다. 우주는 자연의 힘이 아닌 초자연적 정신과 말이 지닌 창조력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창조의 배후에 지성과 의지의 힘이 뚜렷이 작용하고 있다.

심장과 혀에 의한 창조는 심장과 혀가 신체의 다른 기관들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점 즉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정신과 언어에서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각과 청각, 후각과 같은 감각은 자신이 인지한 것을 정신을 담당하는 심장에게 보고한다. 정신은 취합된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하고 언어를 통해서 객관화한다. 인간의 모든 활동과 기능은 심장이 생각하고 혀가 말로 표현한 명령에 따른다. 정신과 언어가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p.101-102

 

 

 

이성적 사고의 가장 큰 특징은 '설득력'.

 

p. 170

 

 

빛의 신인 아폴론은 현상의 지식을 넘어서는 진실 즉 본질적 사고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또한 어둠을 물리치는 빛은 범죄나 비도덕적 행위의 규명과 처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폴론은 도덕이나 법을 주관하는 신이다. 그리스 철학에서, 특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도덕이나 법의 문제가 철저히 이성의 작용과 맞물려 있었던 것은 아폴론적 사고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p.171

 

 

그리움과 상념 두 마음과 같은 감정이 인간에게 가장 큰 해를 입힌다.

 

 

p. 172

 

그러므로 디오니소스 신화는 국가권력과 이성에 도전하고, 지배와 피지배가 없던 기존 공동체 사회로의 지향을 통해 현실의 억압에 도전하는 의미를 갖는다. 디오니소스 의식에 여성과 노예가 주로 참여했다는 점이 이를 시사해준다. 집을 떠나 숲에 머물며 축제를 벌이고, 날짐승을 잡아먹는 행위는 평등하던 수렵과 채취사회에 대한 향수와 지향을 상징한다.

 

p. 175

 

 

제우스로 대표되는 힘과 권위 그리고 수직적 위계구조, 아폴론으로 대표되는 균형 · 조화 · 절제 · 질서 · 이성 · 지식 등이 당시 그리스 고대국가 지배세력의 사유이자 이데올로기였다면, 디오니소스는 해방을 열망하는 피지배 계급의 사유방식을 보여준다. 디오니소스가 도취 · 극단성 · 무질서 · 본능 · 광란 · 환상 · 열광의 상징이 된 것은 이성을 강조하던 지배세력이 악의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최고의 신이고 아폴론이 그의 뒤를 잇는 신이었는데 비해 디오니소스는 신의 대접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던 사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p. 175

 

 

 

<사유와 매혹>

박홍순 지음, <서해문집>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