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일 2019년 7월 1일
식물지도가 우리나라와 비슷한가봐요.
코카서스 여행을 다니면서 우리 산과 들에서 흔히 보는 꽃들이 많아서 놀라곤 했어요.
무궁화, 도라지꽃, 봉숭아, 원추리, 강아지풀, - 머위도 얼마나 흔하던지.
코카서스에서 우리 여행자들의 사랑을 제일 많으 받은 건 단연 살구였어요.
사실, 살구는 우리에게도 흔한 과일이긴 하지만 평소에 마트에서 사먹을 정도로 좋아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여기 살구는 정말!
우리나라의 살구보다는 약간 큰데 정말 말로 다하기 어렵게 아주 달콤해요. 우리나라의 살구가 과육이 좀 무른 편이라 손으로 쪼개면 씨앗에 과육이 지저분하게 달라붙어있기 십상인데 코카서스의 살구는 아주 깨끗하게 똑 떨어져요. 진딧물이나 송진도 없고 가격도 아주 싼 편이라 가는 곳마다 살구때문에 아우성이었네요.
귀국하면 이걸 못먹을텐데 - 다들 이구동성으로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호텔 앞에서도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시골마을 과수원에서도 호두, 체리가 아주 지천이었지만 단연 살구가 최고 인기였습니다.
돌아와서 살구를 검색해보니 코카서스가 원산지였더라구요.
오늘은 조지아 여행의 마지막날.
미세먼지로 이런 하늘을 요즘은 우린 쉽게 보기 어렵죠 .
탁 트인 들판 위로 바다같은 하늘이 펼쳐집니다.
만년설을 인 설산과 기름진 들판,소박하지만 정결한 신심이 깃든 성소들, 조지아의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내 기억은 어쩌면 이렇게 비루하고 한심한지.
시그나기의 보드베 수도원으로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에서 삭제되어버렸네요. -_-;
어제 저녁부터 느닷없이 두드러기와 발열, 가려움증이 생기면서 밤새 긁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뭐가 문제일까, 이제껏 싫어서 안 먹기는 해도, 딱히 몸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은 없었는데 얼굴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머리속까지 가렵고 부었어요.
성녀 니노의 무덤 위에 지어진 보드베 수도원의 성 게오르기 성당입니다.
성녀 니노는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나 꿈에서 조지아로 가서 기독교를 전파하라는 계시를 받고 조지아로 왔습니다. 병자들을 고치면서 전도에 힘쓰던 니노는 미리안왕비의 병을 고치고 위기에 빠진 왕을 구하면서 서기 323년 미리안 왕에 의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받습니다.
성녀 니노는 이곳에서 생을 마쳤는데 그녀의 관을 옮기려 하자 꿈쩍하지 않아서 남자 200여명이 끌었는데도 움직일 수가 없었답니다.
이에 미리안 왕은 이곳에 니노성녀를 안치하고 보드베수도원을 짓게 합니다.
수도원 안에는 아름다운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가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것은 바로 이 이베리아 모자상이라고 합니다.
소비에트 점령당시 수도원을 폐쇄하고 병원으로 사용했는데 성모자상을 수술대로 사용했대요.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 조지아사람들을 비웃으며 수술가위로 이 이콘을 가위로 훼손했답니다. 성화에 가위자국이 있어요. 성화를 훼손한 병사는 죽음을 당했대요.
조지아정교의 정신적인 지주 같은 니노의 무덤인데도 특별히 화려한 장식이 없이 대리석 상판에 십자가만 놓인 무덤이 조지아정교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성당에서는 조지아와 모든 정교 세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예배가 날마다 있다고 하네요.
원래의 수도원은 이슬람과 몽골의 침략으로 심각하게 파괴되었다가 19세기 말, 특히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에 의해 수도원의 대규모 복구가 이루어졌습니다. 1991년 소비에트 정권의 붕괴 이후 수도원은 본래의 자리를 회복하기 시작하여 1991-2000년 사이 대대적인 복구 작업을 거쳐 오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지상의 기도를 하늘로 올린다는 사이프러스나무는 유럽의 성당이나 묘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역시 이곳에도 있군요.
알함브라 궁전에서 보았던 사이프러스 정원이 생각나네요.
보드베수도원의 아름다움은 본당 건물도 건물이지만 잘 정리된 정원이었어요.
언덕 아래 먼 들판 너머 흰 구름을 인 코카서스 산맥이 보입니다.
저 너머가 러시아랍니다.
아름다웠던 보드베 수도원을 나와 시그나기 마을로 갑니다.
작지만 아주 예쁜 마을이었어요.
시간이 좀 더 많았더라면 여기저기 둘러보고 했으면 좋으련만.
마을 한 중간 공원에 조지아가 사랑한 19세기 역사학자, 철학자며 문학가였던 솔로몬 도바쉬빌리의 동상이 있습니다.
마을은 조용하고 아름다운데 객들만 북적이네요.
길가에 늘어선 기념품들은 사실 조지아의 독특한 정서는 별로 안 보였어요.
조잡한 중국산 마그넷이며 투박한 도자기는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얼마나 비싸던지.
흥정을 시도해보다 마땅찮아서 포기했더니 얼른 소매를 잡는데 가격이 뚝 떨어져요.
그래도 역시나 안 내키네요.
점심을 먹으러 간 와이너리가 있는 식당입니다.
사설 민속박물관처럼 꾸며놓았는데 이 집에서 파는 기념품들이 가격은 꽤 센 편인데 품질이 괜찮았어요. 예쁜 마그넷과 포장디자인이 아주 예쁜 차를 (포장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두 통이나 샀습니다.
그런데 헐.
여기서부터 사달이 났네요.
점심을 먹으면서 어어어,,, 기분이 이상하다 싶더니 얼굴이 순식간에 부풀어오르고 벌개지기 시작했어요.
샐러드는 아주 싱싱했고 빵은 맛있었지만 치즈는 입맛에 너무 짰고 술마실 줄을 몰라서 와인도 마시지 않았는데 어디서 탈이 난 걸까요.
여기서부터 신체리듬이 망가져서 남은 여정 내내 괴롭게 되어버렸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