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이야기는 우리 역사관을
지배하는 낡은 신화인데, 그것은 지금의 민족과 민족주의를 억지로 1천 수백 년 전의 한반도 상황에 끼워 맞춘 것일 뿐, 실제로 신라 사람들에게는 고구려나 백제도 당과 똑같은 외세였을 것이다.
p 31
민족주의적 열정은 또 이와는 정반대의 표정을 짓기도 한다. 고구려와 고대 일본어 수사 사이의 개연적 친연성마저 일축하고(그것이 일제의 남조선 재침략을 합리화하고 두 개의 조선을 조작하는 데 가담하는 반동적, 비과학적 주장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태고 이래의 단일한 '조선어'는 일본어와 무관하다고 말하는 북한 학계의 표정이 그것이다. 북한 학계는 고구려와 고대 일본어 사이의 친족 관계 가능성에 주목하는 입장들을 싸잡아서 일-한 양국어 동계론이나 왜- 고구려 공통어설과 일치시키고 있지만, 그것은 거친 재단이다. 그들이 한 묶음으로 비판하는 '일본의 어용 학자들'이나 '남조선의 반동 부르주아 학자들' 사이에도 고구려어의 계통적 위치에 대한 견해들은 널따란 폭에 걸쳐 있다.
p 35
고유어,한자어, 외래어는 세 층을 이루며 또는 동심원을 이루며 한국어를 만들고 있다. 한국어 어휘가 고유어로만 이뤄지지 않은 것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에 고유어로만 이뤄진 언어는 없다. 완전히 닫힌 사회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자어와 유럽계 외래어 같은 차용어들 덕분에 한국어는 그 어휘를 크게 불렸고, 생각과 느낌의 결을 섬세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차용어들은 한국어가 받은 축복 가운데 하나다. 그것들은 외국어 단어가 아니라 한국어 단어다.
p 54
목숨은 사람이나 짐승, 즉 유정명사(有情名詞)에만 쓰일 뿐, 식물에 대해서는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꽃도 생명을 지니고 있다"라고는 말해도, "꽃도 목숨을 지니고 있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그의 작품은 생명이 길 거야"라고는 말할 수 있지만, "그의 작품은 목숨이 길 거야"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빈정거리는 경우를 빼놓고는 말이다. 또 "한 생명을 잉태하다"라는 말은 자연스럽지만 "한 목숨을 잉태하다"라는 말은 부자연스럽다. 이런 경우들은 한자어가 그 고유어 동의어보다 폭이 넓은 경우다. 실은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이 장에 거론된 몇몇 단어에 대해 숙고해 볼 것.
낱말과 그 낱말이 가지는 뜻과 한계를 명확히 구분할 것.
p58
어떤 단어나 표현의 옳고 그름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그 언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
p65
현대 한국어에서 조사 '에게'는 짐승이나 사람에게 쓰인다. 관념이나 식물이나 무생물에 '에게'와 똑같은 기능으로 쓰이는 조사는 '에'다. 사람이나 짐승을 가리키는 명사를 유정 명사라고 하고, 식물이나 무생물을 가리키는 명사를 무정 명사라고 한다. 유정 명사 뒤의 '에게'가 무정 명사 뒤에서 '에'로 되는 현상은 '에게'의 여러 기능에 두루 일관되고 있다.
p 76
'하룻강아지'라는 말은 '하릅강아지'가 와전된 것이다. '하릅'이란 짐승의 한 살 됨을 일컫는다.
p83
우리말의 형용사 가운데는 주어의 인칭을 선택하는 데 제약이 있는 것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심리 형용사라는 것이다. 심리 형용사는 주어의 주관적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형용사를 주관 형용사라고도 한다. 기쁘다, 즐겁다, 반갑다, 슬프다, 분하다, 외롭다, 싫다, 두렵다. 쓸쓸하다, 아깝다, 섭섭하다. 귀찮다. 그립다 같은 형용사들이 주로 이 부류에 속한다.
심리 형용사의 특징은 평서문에서 오로지 1인칭을 주어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기쁘다"라고는 성립하지만 "너는 기쁘다"라거나, "그 애는 기쁘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기쁘다는 것은 주어의 주관적 심리 상태를 드러내므로, '나' 이와의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이 형용사로 서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p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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