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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펼쳐진 일기장

황금시대

by 소금눈물 2014. 10. 19.

 

 

 

 

 

 

허위완화 감독의 <황금시대>를 보았다.
뉴스로 보면 흥행에는 실패했다는데, 실패할만 하다.
형편없는 영화여서 실패했다는 말이 아니고, 여러 가지면에서 한국에서는 흥행하기 어려운 영화여서 하는 말이다.
일단 런닝타임 세시간은 결코 만만한 시간이 아니다. 그 긴 시간을 관객을 잡고 있으려면 화려한 볼거리나 특수효과같은 게 도움이 될텐데 그런 영화가 아니다.
게다가, 1930년대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정부가 대립하고 거기에 태평양전쟁까지 가세하던 그 시기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나라가 배경이라 해도 관객들을 홀리기엔 쉽지 않을 터이다.
우리에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나 자신도 등장인물 중에 아는 인물은 뤼쉰밖에 없다 -_-;;) 중국 근현대의 작가들 이야기라니. 흥행을 노렸다고 보기엔 아무래도 무모하다.
그럼에도!
그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로 행운이고 분명 고마운 일이다.
세미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어서, 영화 중간중간, 인물들을 바로 카메라 앞에 불러내어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작품들을 보여주며 작품속 인간들이 그 시간들을 어떻게 느끼고 견디고 싸워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현실과 과거가 섞여서 공존한다.
재능을 원치 않는 시대에 너무나 뛰어난 재능을 갖고 살다간 여자. 그녀의 인생은 결코 황금시대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 재능을 사랑했던 남자는 그 재능때문에 그녀를 떠나간다. 그녀가 버렸던 남자는 그녀를 찾아와 그녀를 망가뜨리고 사라진다. 그녀를 연민했던 남자는 또 가장 나약한 남자였다.

작가란 당대의 현실과 그 인민의 고통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존재여야 한다는 건 내 지론이고, 그게 모든 작가에게 해당되는 말일 수는 없겠지만, 오직 글을 쓸 수 있는 환경만을 원하고 그게 자신의 인생 전부이기를 꿈꾸었던 여자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당연히 너무나 짧았다.

영화가 아니라 장편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중국의 현대작가들에게 그 시기와 '문화대혁명'을 넘지 않고서는 자신의 창작세계를 만들 수 없는 건가, 그만큼 압도적이고 강력한 트라우마인가 생각했다.

우리의 작가들에겐 세대를 아울러 그만한 과제가 되는 사건이 무엇이 있을까.
4.19세대, 광주 세대,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던 세대, 그리고 지금은...?
 세월호 세대가 곧 나오겠지.

좋은 영화는 오래 마음을 붙잡는다.
좋은 책과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났더니, 중국근현대사를 다시 읽고픈 생각이 들었다.
뤼쉰 말고는 단 한명도 알아 볼 수 없었던 무지가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