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93
......
이미 신앙인인데... 죽음 앞두고 즈카리야로 세례 받아
지난 해는 알다시피, 토끼의 해였습니다. 토끼의 귀는 귀 기울이는 자세를 상징합니다. 과연 우리가 타인의 말, 시민의 말, 시대의 말,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는가를 잘 반성하고 종합하라는 것이 김근태 님의 교훈이 아닐까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새해 들어 추모미사, 영결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용의 해입니다. 성서에서 용은 다른 의미로 뱀과 연계해서 사탄으로 이해되지만 동양에서 용은 하늘의 비와 왕권을 상징하는 힘입니다. 인간의 이상과 꿈입니다. 그렇다면 김근태님이 이 해에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언제나 희망을 갖고 꿈을 간직하라, 희망과 꿈속에서 아름다운 미래를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일 것입니다.
김근태님이 입원한 후, 인재근님의 연락을 받고 3번 병원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재근 엘리사벳님은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을 할 때는 투사였는데 신앙이 그토록 깊은지 이번에 확인했습니다. 저보다 더 깊은 믿음과 신앙을 확인했습니다. 절망에 있는 남편에게 늘 희망을 심어주면서 “여보, 힘내요”를 끊임없이 외치면서 지난 모든 삶을 종합했습니다. 사제인 저에게 왜 가까운 이에게 전교하고 세례를 주지 않는가? 라고 말하면서 꾸짖기도 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진리와 정의 공동체를 위한 삶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 신앙인이다, 세례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성서에서도 약하고 짓밟힌 형제자매에게 해준 것이 예수에게 해 준 것이라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깨닫는다면, 세례를 넘어선 하느님과의 관계가 우리 모두에게 보장된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받기를 원했습니다. 10여일 후, 병세가 호전되면 미사를 봉헌하면서 병실에서 지인들을 모시고 세례를 줄 생각이었는데 병세가 악화되어 인재근님이 십자가를 든 가운데 세례성사와 병자성사, 종부성사를 주었습니다. 그 순간에 옆에 있던 형수가 김근태 님의 귀에 “하늘나라에 가시면 형님이 맞이하실 거예요, 세상에서의 모든 어려움 다 끝내시고 완결의 기쁨을 이루십시오”라고 하면서 고별인사를 드리는 것을 봤습니다.
젊은 시절의 꿈을 온 몸으로 실천한 증언자
저는 숨가쁜 김근태님의 병실에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 민족의 모습, 민족의 일치와 화해, 민주주의를 위해 줄기차게 뛰어왔던 우리들의 모습이었다고 확신했습니다. 또 그 모습은 마지막 목표점을 향해 최선을 다 해 뛰는 선수의 숨결입니다. 민주주의와 정의, 민족의 일치와 화해,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 조금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뛰어야 합니다. 이것이 김근태 님이 병상에서 숨결을 통해 우리에게 준 교훈입니다.
그분의 발자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중학교 시절, 3,15부정선거를 보고 영국의 한 기자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기사를 읽고 그는 큰 분노와 모멸감을 느끼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투신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이후 4,19혁명으로 민주주의가 꽃피었지만 5,16쿠데타로 짓밟혔습니다.
그때 김근태는 또한번 좌절하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설 큰 꿈을 간직했습니다. 그 꿈은 박정희 군부독재, 전두환 군부독재와 맞서는 힘과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 꿈을 좌절시킨 두 장애물과 맞서 싸운 그는, 1983년 살벌했던 시대, 그 어떤 민주화 단체도 결성될 수 없었던 때, 뜻있는 이들과 함께 민주화청년운동연합을 결성했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건 결단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결성으로 김근태 님은 안기부에 체포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그해 9월 전기고문을 여러차례 받았습니다. 배후를 지목하라는 강요로 더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 모두는 그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군부 잔재를 몰아내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의 꿈을 온 몸으로 실천한 증언자였습니다.
평화, 정의, 지혜
이런 아름다운 삶을 기초로 시편 58장을 읽으며 묵상했습니다. 주로 탄원기도. 개인의 아픔, 공동체의 아픔, 민족의 아픔을 하느님께 아뢰는 탄원기도. 그 중에는 저주의 기도도 있습니다. 악인들이 끝장나는 세상을 실현해 달라, 우리가 착한 사람들이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바빌론 유배 속에서 강대국 침략에서 권력자의 폭압에서 바쳤던 시편 작가의 호소를 생각하며 김근태 님을 묵상했습니다.
김근태 님이 계속 추구했던 가치는 평화, 정의, 지혜였습니다. 평화를 첫 자리에 놓았다는 것을 한참 생각했습니다. 평화보다 정의가 앞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김근태 님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의 행동, 지향, 목적이 바로 평화였던 것입니다. 그 근거가 정의입니다. 정의 때문에 싸웠고, 그 삶은 지혜로운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세 단어를 묵상하며 성서 안에서 재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고 지혜롭게 실천했던 김근태 님이 결코 불의와 거짓과 악과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김근태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거짓 언론은 불타서 없어져야 합니다
저는 김근태 님의 실천적 영성에서 우리 현실에 대한 교훈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역사를 왜곡하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꾸짖지만 우리 안에도 일본의 거짓요소가 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를 찬양하는 것이 타당한가, 묻습니다. 김근태를 따른다면 이 거짓 논리와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을 왜곡하고 국민을 속이는 거짓 언론들, 조선, 중앙, 동아, 방송사들. 저는 1987년 6월 항쟁 때 명동성당에서 방송사 취재차량이 불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거짓언론은 불타서 없어져야 합니다. 그런 언론은 취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하느님 정의의 뜻일 것입니다. 조중동의 거짓 언론을 지켜보면서 원죄의 내용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이야기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속은 것입니다. 그들을 속인 사탄은 뱀입니다. 그 존재를 확인해야 합니다. 원죄 이전에 그들을 속인 원죄를 선(先)원죄라고 저는 부릅니다. 아담과 하와를 속인 사탄의 후예들이 거짓 언론들입니다. 이것을 타파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역대 정권은 시간이 지나면 끝납니다. 그러나 언론이 우리의 머리를 세뇌시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신앙인이라면, 세례 때의 약속처럼 죄와 악과 사탄을 끊어버린다는 약속을 되새긴다면 거짓 언론을 끊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책무입니다. 이게 김근태님의 교훈입니다. 김근태 님을 묵상하면서 그가 이룬 좋은 일들을 껴안고 더 큰일을 이루는 것이 책무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독서인 바오로 사도의 유언은 그에게도 해당됩니다. 피를 흘려 하느님께 아름다운 제물로 바치는 삶을 다짐하고, 주님의 길을 닦고 하늘의 소식을 전하는 선구자, 그리고 홀연히 사라지는 겸허한 예언자의 자세에 그의 아름다운 삶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유언과 같은 삶을 사셨고, 세례자 요한의 아름다운 선구자적 일을 행하신, 그의 삶을 마음에 모시면서, 사랑하는 동지들, 교우들, 수도자들과 사제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청합니다. 거룩하신 하느님, 김근태 즈카리아 형제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앞서간 모든 형제자매들에게도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저희 모두의 염원인 민족 일치와 화해, 정의의 공동체를 이루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성령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그룹명 > 함께 가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피하다 정말 (0) | 2012.01.26 |
---|---|
봉도사 헌정만화 (0) | 2012.01.04 |
정봉주 전 의원을 위해 기도를 부탁합니다 (0) | 2011.12.30 |
2012년, 119가 새로워집니다. (0) | 2011.12.29 |
<나는 꼼수다> 특별공지 (0) | 2011.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