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따뜻한 밤

by 소금눈물 2011. 11. 4.



홍삼을 드시고 가까스로 신열이 내리고 숨소리가 편안해진 전하.
하지만 여전히 의식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원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국사를 맡아 처리하시고, 피로를 풀 여유도 없이 환궁하신  전하의 병상을 지켰던 저하.




저하.
벌써 나흘째 침수조차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위중한 고비는 넘으셨으니 오늘은 그만 침소로 드시옵소서.

피로한 저하를 보다못해 어의가 조용히 아룁니다.




아니오, 난 괜찮으니 게의치 마시오.




어의의 말을 듣거라.

힘이 없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말씀.
저하는 당신의 귀를 믿을 수 없습니다.



희미하게 눈을 뜬 전하.
의식이 돌아오셨군요.




전하!




전하!
이제 정신이 드시옵니까.




고개를 끄덕이시는 전하.

난 이제 괜찮으니 그만 돌아가 보거라.

말 한마디를 뱉으시는 것을 이토록 힘겨워하시다니...



아니옵니다.
하루만 더 곁을 지키겠습니다.




허허..
고집을 부리려거든 가서 네 얼굴이나 좀 보고 오거라.
고작 며칠 사이에 어찌 그리 수척해진 것이냐.

보나마나 며칠밤을 밤새 붙어앉아  숨이 졸아붙게 불안했을 세손.
다 자라 간혹 조정의 권신들을 몰아부치기는 하는 세손이지만 전하의 눈에는 할아버지를 잃을까 동동거리며 울었을 어린 손자로만 보입니다.




저하의 눈에도 지금 누워계신 분은 임금이 아니라, 그 무섭고 엄하시던 어른이 아니라 나이들고 지쳐 병고에 괴로운 애틋한 할아버지일 뿐이시지요.




애썼구나...
늙은이 때문에 괜한 고초를 겪었다.




전하...

수척해진 손자를 걱정해주시는 따뜻한 말씀에 마음이 저립니다.
이렇게 따뜻한 할아버지의 마음을 그동안 저하는 몰랐습니다.
잘되라 채찍질하심임을 알지만, 다정한 할아버지이기 이전에 어려운 임금이셨던 분.
하마터면 이 따뜻한 말씀을 영영 못들을 뻔했습니다.




눈물이 고인 손자의 얼굴을 힘겹게 올려다보시다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는 전하.


아직은 어리고 약한 세손.
이 착하고 총명한 것을 못 보고 갈 뻔 했구나.
이렇게 떠나면 저 여린 가지가 어떻게 부러질지 모르는데,
아직은 더 지켜주어야 하는데...

숨쉬는 것이 아직은 힘겨운 전하시지만,
두 분 마마의 마음은 따뜻한 마음이 흘러 이제야 비로소 평온해진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