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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고종석- 사랑했던 것들과의 고통스런 이별..

by 소금눈물 2011. 11. 28.

 

02/01/2010 07:43 pm공개조회수 2 1

백 번 양보해 좋게 말한다 쳐도 외골수, 곧이곧대로 말하면 앞뒤 없이 꽉 막힌 답답함, 미련함, 쇠고집- 이게 내 성격이다. 결코 좋은 말이 아니지만 인정한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누가 뭐래도, 무슨 손해를 보더라도 제 살을 파먹으며 그리 빠져 살고 한 번 아니다 싶으면 고개를 갖다 쳐박아도 처박힌 자리에서 그냥 코박고 죽고 말 못된 성격이 나다. 이러니 부드러운 관용이랄까 너그러움 같은 건 애저녁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켜주고 싶어 열심히 살았고 다행히 그게 사회적인 통념을 크게 거스르지 않아서 적당히 사랑받으며 또는 적당히 염려섞인 보호를 받으며 그리 왔다.

무지막지하게 내가 사랑하며 열렬히 따라온 이름 중에 그가 있었다 고종석.그가 낸 책들은 거의 다 갖추었다.열렬한 애독자이면서 팬이기도 했던 나는 그게 결코 부끄럽지않았다. 그의명료한 문장과 재치는 그의 문학평론을 읽는 것이 즐겁게 했다.세상을 보는 눈이 나와 크게 어긋나지 않아시사평론집도 더불어 함께 가는 즐거움이 컸다. 그가 좋다는 이들이 내가 갖는 잣대와 달라 갸우뚱한 적도 있었지만 그건 그 사람의 잣대이고 내가 못 보는 미덕을 가진 것이라 생각하며 이해했다. 그러니 그는 내가 앞서 말한, 그 죽어라 좋아하는 그 항목에 제일 먼저 등장할 이름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를, 그렇게 좋아했던 고종석을 오늘 나는 울며 버린다. 지난 오 월, 갈가리 찢긴 마음으로 위로를 받으려 폈던 그의 책에서 제대로 뒤통수를 맞으며 상처를 받고 억지로 닫았던 마음을...오늘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확인했다.

그래.. <노무현>의 모든 것이 좋았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그도 실수가 있었고 또 내 사랑에도 지나침이 있었다. 그의 모든 정책을 지지하지 않았고 날카롭게 맞서며 원망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단심을 믿는다. 지나와 생각하면 그의 단심을 오히려 내가 깎아 오해하며 섣불리 포기한 것이 더 많았다는 자책이 크다.

그의 단심을 믿지 못했던 죄스러움, 상처, 고통, 지워지지 않을 그 괴로움을...그는 그의 '연기'라 했다. 정치인으로서의 탁월한 연기...그 연기를 과하게 슬퍼하며 슬픔을 '독점'했다며 유시민의 오열을 꾸짖기도 했었다.

조중동의 지저귐이야 애초에 믿지도 않고 읽지도 않으니 그것들의 난설은 애초에 상처도 아니다. 내가 정말 상처받고 서러웠던 것은, 내 편이라 믿었던, 내 사표라 믿었던 이런 지식인들의 거룩한 꾸짖음, 난 척하는 이 오만방자한 설레발이었음을 이제 뼈저리게 느낀다. 이명박도 싫고 노무현도 싫고 진보세력은 애들 같고- . 책임지지 않아도 될 만한 자리에서 멀찌감치 서서 팔짱끼고 모두를 탓하며 세상을 개탄하는 이들의 그 잘난 붓질을 나는 이제는 혐오한다. 같은 무게로 재어야지. 왜 똑같이 욕을 먹나? 노무현을 잰 잣대로 이명박을 재고, 노무현을 떠다민 무게 대로 진보도 밀어봐야지. 왜 누군가의 단심은 연기로 조롱받고 누군가의 추악한 죄악은 모른 척 넘어가주나? 그게 능력으로 포장이 되어서?

몇 달전에 우르르 사놓고 뒷전에 밀려 늦게 펴보았다가 제대로 상처받았던 책이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 덮어놓았다가 오늘 다시 펴 읽으며 나는 줄줄 울었다.


당신을 참 많이 사랑했다. 이 꿈집에도 가장 많이 등장한 작가가 당신이었고 가장 많이 등장한 책의 지은이였다.

이제 버리겠다. 돈을 주고 샀으니 종이값이 아까워 끝까지 버티고 읽기는 하겠다. 하지만 당신의 글들을 사랑하고 마음 담았던 그 구절들, 내게 가장 빛나는 위로였던 그 시간들에 대해 나는 이제 안녕을 고하련다. 앞뒤없이 사랑하고 미더웠던 것들에게 등을 돌리며 내가 얼마나 아픈지 당신은 모르겠지.

나는 단순하고 무지하여 당신 처럼 화려한 말로 내 마음을 포장하고 내 지식을 자랑할 재산이 없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내가 서 있는 자리만큼, 내가 믿었던 사랑의 무게 만큼은 세상에 책임지며 그리 살겠다.


시인이며 정치가였던 김정환이 백석문학상을 탄다는 소식에 가슴이 파드득 설레었다 했지.
시인이며 정치가였던 김정환에게 나는 그 이름들이 부끄럽지 않냐고 묻고 싶다. 대한민국 시인? 대한민국 정치가? 백석문학상을 받을 만한, 백석이라는 이름을 편히 받아도 될 만큼 그는 부끄럽지 않은가?


'내 편'이라 믿었는데 그게 터무니없는 내 오해여서 당신을 버리는 마음이 이렇게 서러운 것은 아니다. 내가 쌓아온 믿음과 별개로, 당신의 그 말들이, 그 낱말들 하나하나가 이렇게 아프고 상처를 후비는 쇳돌들이라 도저히 당신을 좋아하고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문열의 책들을 죄다 내다버릴 때는 느끼지 않았던 괴로움이다. 이문열이 주지 않은 고통을 당신이 주었다.


안녕 고종석.
안녕.


*
<경계긋기의 어려움>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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