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에 정을 두어 다른 고장보다 자주 놀러다니면서 거기서 먹는 먹거리맛이 언제나 각별했다. 강 하나, 산 하나를 두고 다른 고장들보다 어쩜 그리 상치레가 화려하고 맛이 좋던지.끼니때가 되면 기어코 행정구역을 달리해서 전라도 땅에 들어와 밥을 먹으려는 고 애를 썼다.뻘도 좋고 산도 좋고 들도 이렇게 풍성하니 먹거리가 자연 풍성하고 거기에서 나온 솜씨들이 오죽했을까보냐.먹는 것에 힘쓰지 않으면서 길 나서서 욕심이 생기는 건 순전히 남도의 맛 때문이었다.
실수다. 이 책을 잡은 것은.
영산포, 영광, 목포, 해남,영암, 무안, 진도, 나주를 거쳐 장흥, 완도, 여수까지- 그 풍성한 먹거리들이 넘쳐나는 섬이며 들녘에서 나는 무진무진한 음식치레들과 그 맛의 화려한 자랑들, 한 장을 넘기지도 못하고 군침이 돌면서 허기가 진다.
고장마다 서로 자랑하며 다투어내는 요리들. 그요리들마다 담긴 사연도 재미있고 글로 풀어내는 맛자랑도 탁월해서 연신 입맛을 다시다가 짜증까지 난다. 내 기필코 가 보리라. 미운사위 고운사위 허겁지겁 달려든다는 장흥 매생이 해장국도 먹어보고 맛 천 점 영양 만 점이라는 장흥 석화구이도 맛보고 개펄산삼 탕탕낙지도 먹어보리라. 하지만 불끈한 각오보다 상상력이 제 먼저 달려가니 이건 순전히 읽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때로 집요하리만큼 강렬하다. 어렸을때 먹어본 개복숭아의 씁쓸한 맛은 복사꽃이 질 때마다 먼저 떠오르고, 무궁화나무잎 된장국의 달큼한 맛이 선명하게 입끝에 남았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지만 무궁화나무는 아욱과이다. 그 여린 잎을 넣고 된장국을 끓이면 영낙없이 아욱맛이 난다) 어떤 시절, 사건을 생각하기에 그때 먹었던 음식으로 그리워지는 추억은 어떤 다른 향수의 도구보다 강력하고도 끈질기지 않은가.
대를 이어서, 한 고장사람들이 자신의 삶속에서 버무려내고 대를 이어 이제는 그 고장의 특색이 된 맛이라니 그 깊이야 오죽할까. 그런 풍성한 고장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부러워져서 저절로 한숨이 난다.
읽다보니 내가 거쳐온 집도 몇 집이 된다. 그 시간들을 함께 만들어준 친구에게 새삼 고마움도 깊어진다. 아니었더면 그 여행을 내가 어찌 했겠으며 그런 이야기가, 그런 아름다운 풍경과 밥상을 어찌 알았을까.
책장마다 넘치는 맛자랑과 꼼꼼한 사진들, 그 맛고장, 맛집 주위에 찾아가기 좋은 여행지 정보까지 잘 차려진 잔칫상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라고 나는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정신없이 바쁜 시대에 어지간히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빠른 시간 안에 이 맛들을 다 섭렵하기 어려울테고 그게 어떤 고문일지는 다 짐작이 가는데 그 짓을 어찌 시킬까나. 아 이건 정말 고문인게다.
그래도 남도에 들르겠다면, 이 제목들만이라도 꼭 기억해서 찾아가보라고 귀띔해주고 싶다.
이 책에 실린 남도의 맛 이야기 제목은이렇다.
짭쪼름한 서풍에 길을 묻다
영산포 홍어를 부활시킨 홍어 명인
대한민국의 입맛을 사로잡은 천 년의 맛
간재미 먹고 숨은 ‘진(珍)’ 맛 상상하기
버릴 게 없는 민어, 잊을 수 없는 맛
한 가지 음식에 담긴 열 가지 맛, 백 가지 마음
낙지와 소갈비 뜨거운 만남에 관광객도 후끈
‘개펄에서 캔 산삼’ 탕탕낙지·기절낙지 요리법도 가지가지
닭장에서 갓 잡은 토종닭 ‘코스요리’로 즐겨보세요
남도 서민이 즐기던 진하고 깊고 구수한 맛
삼겹살의 ‘오래된’ 미래를 찾아서
장어 일가의 달콤하고 넉넉한 보양
통 큰 선주의 당당한 병어 예찬
육회도 듬뿍, 정성도 듬뿍 옛날 시골식 비빔밥
개펄서 ‘펄떡펄떡’ 못생겨도 맛, 영양은 최고
남해안 푸른 물에 몸을 누이며
‘미운 사위’도 ‘고운 사위’도 반한 속풀이 해장국
전복도 나이‘테’가 난다
운 때 만난 서대, 입맛에 조화를 부리다
알큰매콤 아삭아삭 다른 반찬 필요 없당게
특급 장어, 대를 잇는 비밀의 맛
숯 향과 꽃 향을 타고 만 리에 번지는 미소
남성엔 힘을, 여성에겐 매력을 ‘맛 천점 영양 만점’ 굴구이
한우의 춘추전국시대를 호령하는 매실한우
단골손님은 제철을 즐길 줄 안다
참꼬막·새꼬막·피꼬막, 거리도 밥집도 온통 꼬막 향
산, 골, 내를 넘나드는 바람 소리
게 맛을 알려거든 압록으로 가라
조미료 빼고 정성 듬뿍, 자연 그대로의 산나물 맛
100년 내려온 손맛으로 뭉친 갈빗살 덩어리
그윽한 고택에서 맛보는 향기로운 산해진미
‘검은 것이 좋다’ 전통식으로 만든 검은콩 두부
주모의 이야기로 차려진 맑고 뜻깊은 상
눈으로 맛보고 쌈으로 싸먹는 이색 두부
밥도 국도 반찬도 대숲 향기 ‘쏴아’
지친 간 풀어주고, 쓰린 속 다독이는 최고 해장국
섬진강 꽃바람 쐬며 뽀얀 재첩국 한 그릇 후루룩
20년째 메기와 씨름 “자연산인지는 메기 스스로 잘 알지”
제목: 우리땅 남도 맛 이야기
지은이 : 이병학, 김성대
펴낸 곳 : 북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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