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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낡은 서고

악마의 정원에서

by 소금눈물 2011. 11. 28.

 

10/21/2008 03:45 pm공개조회수 4 4




고백하자면 한 권 내내 이렇게 주구장창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책인 줄은 몰랐다. 언뜻 표지와 제목만 보고 미술사에 등장하는 음식들 이야길까 싶었더니 와장창 깨졌다. 첫 장부터 마지막 주석까지, 세계사의 굽이마다, 문화마다, 나라와 지역마다 등장하는 온갖 기괴하고 평범한 음식들과 그 요리법에 얽힌 갈등과 전쟁의 파노라마다. 무슨 음식 한 접시에 이토록 장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얽히게 될 줄을 몰랐다.

음식 뿐 아니고 사람들이 먹고 움직이는 모든 바탕에는 그 집단이 속해있는 자연에서 익힌 생존의 법칙이 적용되기 마련이지만 음식은 더더구나 그런 것 같다. 어떤지역에서 금기되고있는 (예를 들어 돼지고기 등) 음식 재료들은 그 토양에서는 상하기 쉬워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종교 의식과 결합되어 터부가 되는 일이 가장 흔하다. 예전에 성경공부를 하게 되면서 성경에서 접했던 금기음식에 대한 밑바탕이 사막의 유목민들에게 어울리지 않은 식습관이 크게 작용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제서야 그 길다란 금기목록이 이해가 되었었다.이 책을 읽다보니남아메리카의 식습관이나아시아 일부지역의 기괴해보이는 식재료나 그 요리법들도그런 이유들이 비슷하게 존재한다.

특정 음식에 대한 열광이나 강력한 터부는 그런 자연적인 조건 말고도 종교나 그 집단의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 일제 강점하 이후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흔히 멸시하여 대할 때 마늘, 김치를 먹는 인간무리들로 거론하는 일도 그런 경우겠다. (그런데 우리는 음식으로 일본을 욕할 때 어떤 걸 말하지? 기억이 안 난다 -_-;) 다른 집단에 대한 그런 역사적인 우월감이나 증오, 몰이해로 '~~을 먹는 사람들'의 예는 아주 흔하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이슬람이나 힌두교도들이 그 예겠지만 이 책은 광범위하게 다루다보니 우리에겐 낯선 유럽의 고대 족속들, 혹은 북유럽과 북아메리카인들의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빚어지는 서로에 대한 멸시들도 많이 등장한다.

가장 끔찍했던 예는, 인류와 가장 가까운 포유류, 아니 그 뿌리가 같을 것으로 짐작되는 영장류 침팬지에 대한 잔인하고 끔찍한 탐식의 현장 보고다. 종교적인 제의로 베풀어진 인간들 서로의 식인풍습보다 더 끔찍하게 다가왔다. 그런 예가 결국은 에이즈로,광우병으로 발전되어 인류의 멀지 않은 몰락의 미래를 짐작하게 되었다.

다양한 예들과 역사적인 에피소드들은 쏠쏠하게 재미가 있었지만 그 대부분의 밑바탕에 어처구니없는 인간의 광기와 무지가 불러온 전쟁과 학살의 역사였던 것을 생각하면 읽는 내내 유쾌할 수만은 없었다.

아주 독특한 관점에서 인간집단의 미련함을 되새겨보게 된 책이다. 다시 말해서 미술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야말로 "악마의 정원"에서 줄줄이 캐나오는 재료들과 그 재료들을 요리하는 미친 인류의 식탁 이야기다. 물론 그 악마의 정원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제목 : 악마의 정원에서
지은이 :스튜어트 리 앨런
옮긴이 : 정미나
펴낸 곳 : 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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