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하는 다 잊었다고, 제발 바보처럼 굴지 말라고 대수는 화를 내지만
정작 저도 저하를 못잊고 걱정함을 압니다.
궁으로 가기는 커녕 행여 누가 알아볼까 남의 눈을 피해 살아온 구 년,
미련(未練)이 미련일까...
손때 묻을까 고이고이 간직했던 저하의 술띠.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들여다보면서 그날을 생각합니다.
내 이름이 산이라고, 한번 불러보라고 하시니
철없어 얼마나 망극한 일인지도 모르고...
다시 뵈올 날이 왔다 해도, 미욱한 것, 그것을 참이라고 믿었더냐 탓하시면 어찌할지.
무명저고리에 묶어주신 술띠는 송연의 마음까지 묶어버렸는데...
마음에 싹이 있다면 어떤 꽃으로 피우려 이리 슬프고 외로운가.
정녕 잊으신 건가.
빈뜰에 내리는 달빛은 잠들지 않고
밤이 깊도록 서안 앞에 앉아계시던 저하
낮에 동산에서 만났던 생각시 아이가 흘리고 간 천을 보다
오래 전 딱 고만했던 어린 생각시 아이가 생각났습니다.
나인 언니들의 심부름으로 한밤중에 길이 익지도 않은 궐을 헤메던 아이.
이름을 부르랬다고 얼결에 부르고는 두 눈이 동그래져 황급히 엎드리던 아이.
잘 있을까...
곤경에 처한 나를 위해 나도 모르는 곳에서 그리 애를 쓰고는
못된 무리들에게 쫓겨 어디로 가 버렸는지
목숨이나 부지하고 살고 있으려나
받든다 모신다 하나 천지간 믿을 사람 하나 없는 막막한 삶.
아무 이익도 공도 없을 것을, 누가 그렇게 물심양면으로 제 처지를 살피지 않고 나를 구원했던가.
동무라 했지만 정작 도움만 받았지 그들의 삶터까지 망가뜨리고 만 저하.
다시 만난다면 미안했다고, 내 뜻이 아니었다고 말해야 할텐데...
그래도 딱 그 며칠의 추억이, 살면서 참 따뜻하게 그리웠던 이야기라고
그런 동무들이 내게도 있었다고
저하는 생각합니다.
어디 있을까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리움은 그림이 된다하는데, 이 그리움은 어떤 그림이 되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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