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가장 철저하게 희생되어온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이야기다. 우리가 티비 드라마에서 따사롭고 인정많은 고향의 원형으로 포장되어서 이미지 학습된 그 농촌이 아니라 그냥 우리 농촌, 살아있고 다치고 절망하는 그 모습 그대로의 우리마을 이야기다.
일생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정부의 정책에 농락당하고 눈치빠른 시골의 떠도는 돈에 짓밟히는 이가 있고, 그런 가장들 옆에서 바깥세상의 변모하는 새물결에 흔들리고 홀리는 안사람들이 있고, 가당찮은 시류를 업고 고향에 돌아와 어줍잖은 주접을 떠는 여인네가 있고, 그 농부들을 어르고 뺨치며 군림하는 하급벼슬아치가 있고, 싹수 노란 그 동네 출신 장사치가 있고...
김씨 이씨 최씨 장씨 황씨들이 어울려서 피폐해지는 농촌 한 단면을 적나라하고 날카롭게 보여준다.
농가정책의 부재와 실패는 고스란히 그 땅에서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이들의 것이 되고 그것은 대대로 물림이 될 수 밖에 없다. 답답하고 캄캄한 이 모습들이 근대화가 막 훑어지나가던 2,3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세월이 흐른 후의 농촌의 모습은 날마다 티비 화면에서 분노에 찬 농심이 땅을 갈아엎고 쌀을 흩으며 나선 오늘이 되어버렸다.
-걔덜은 즤 엄니가 쪽 뽑구 나설 옷이라도 있으닝께 그러지. 니미는 남 다 입는 홈스팡 바지는 워디 갔건, 털루 갓테두리헌 그 흔해터진 쓰레빠 한 짝 사다준 구신이 웂는디 뭘루 채리구 나스랴?
- 씽 - 그럼 오백 원만 줘. 우람이 갈 때 따러가서 징글벨만 보구 올께.
-그 오백 원 같은 소리 작작 해둬라. 돈은 왜 나버러 달라네? 등창에 댓진 바른 사람 니 옆댕이 누워 있는디...... 니미는 늬 애비 만난 뒤루 돈 안부 끊겨서, 오백 원 짜리에 시염이 났는지, 천원짜리가 망건을 썼는지, 질바닥에 흘린 것두 못 알어봐서 못 줍는단다.
-하여튼이 여하튼이라구 놀뫼마을에 말 못혀서 죽은 구신은 없다..
기가막힌 풍자와 야유가 스리슬쩍 넘어가는 충청도 사투리에 옹골지게 들어찼다.
눈으로 읽다가 그 뜻이 긴가민가 해서 소리내어 읽어보면 무릎을 탁 치게 구수하고 절묘한 말들이다. 떨어진 말들을 얼른 주워 먼지 앉을 세라 쟁여두고 싶다. 이 단단하고 야무지고 눙치는 사투리를 다 잊어버렸으니...
같잖은 잡문을 쓰다가 그 말색깔이 그거였던가 혼자 웅얼거려보고 그래도 안풀리면 나는 이 책을 열어본다. 고샅길에서 아침담배를 나누어피는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의 두런거림이 그대로 들어있다.
"근대화"의 바람이 할퀴고 가는 농촌에서 그 어른들은 지금 고향 둥구나무 밑에 그대로 계실 것만 같은데 고향을 버리고 도시내기가 다 되어버린 김,이,박가의 이 딸은 잃어버린 말과 이 말들의 따뜻하고 뿌리단단한 탯자리를 아프게 그려볼 뿐이니...
마을을 지키던 어른들도 아니계시고, 이문구 선생도 가시고.....
허우룩하다.
제목 : 우리동네
지은이: 이문구
펴낸곳: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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