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을 생각하며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자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오늘 읽는 김수영은 왜 이다지도 서러운가.
혁명도 안되고 방도 바꾸지 못하고-
설움에 겨워 눈물을 씻어야 하는 나는...
의지도 없이,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기력도 없이
나는 저 시퍼렇고 눈물나는 "혁명"을
달콤한 제 자랑질의 목걸이로나 삼는 무리들과
감히 제 입으로 이 시절을 4.19직전의 상황 운운하는 개떼들의 울부짖음으로나
듣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까..
정의와 진실은 현실속에서 끝없이 패배한다 다만 긴 역사 속에서 승리한다 (조정래-한강-)고 했지만, 긴 역사를 지켜보기엔 우리 숨이 너무 짧다...
나는...지쳐버릴게 더 겁나....
제목: 사랑의 변주곡
지은이: 김수영
엮은이: 백낙청
펴낸곳: 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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