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배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 같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퉁퉁 두드리다 낙수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다.
언제부터 비가 왔던 걸까.
흐린 잠결에 귀가 열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비였던가.
"뭐해....?"
굳어버린 등을 보고 있었는지 철만의 목소리가 낮았다.
물기를 머금은 것 같았다.
내내 존대말을 하다가도 이부자리 속에서 만나면 왜 말이 놓아지는 걸까 이 아이는.
하긴 몇살이 위고 아래고가 문제일까
몸으로 만났으면 너는 남자, 나는 여자. 딱 그 구도만 남을 뿐이지
네가 어리던, 혹은 무엇으로 밥벌이를 하는 애건 그게 문제가 되겠어.
은숙은 대답하지 않고 돌아누운 채 이불을 뒤집어썼다.
"비가 오네...."
철만의 목소리에도 부드럽게 빗물이 젖어들었다.
돌린 등허리로 철만의 얼굴이 기대왔다.
"이러지 마"
눅눅한 이불에서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낭자한 정사의 뒷자리보다 늦게 밀려오는 이런 냄새들이 더 불쾌하고 울적하다.
일주일만에 만난 철만은 쫓기듯이 서둘렀다.
미친듯이 가슴을 헤집는 손을 밀어내다 은숙이도 어디쯤에서 같이 휩쓸려 넘어져 버렸다.
쥐어뜯을 듯이 몰아치던 손길끝에, 철만은 기어이 쿨적쿨적 울어버렸다.
바보같이...
이 아이는 무엇인가를 예감하는 걸까. 아니면 알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이게 무엇인지.
이런 사이비한 열정들이 언제까지, 얼마나 위로해줄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몸이 가고, 가는대로 감정도 따라가는 이 어리석음이 정말 위로해줄까.
위로가 되어서가 아니라, 위로라고 생각하면서 버티는 건 아닐까...
은숙은 꼼질거리는 철만의 손끝에서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툭툭 두드리던 빗소리는 이제 점점 줄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토도도도 구르다 가늘게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갔다.
흐르는 빗줄기 어디쯤에서 철만의 처음 얼굴이 젖어서 등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