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냐?"
"양촌 지났내벼. 더 자."
"아니다. 내가 잠깐 졸았내다. 아이고 요즘은 글쎄 물 먹은 솜처럼 날마다 피곤허다."
"언니 어디 아픈 거 아녀 진짜?"
"아프기는. 나만큼 건강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너도 내 나이쯤 되어봐라. 까닭없이 자주 피곤허구 늘어지구 그런다.
지난 주 내내 부흥회를 혔잖여. 그려서 그런게비다."
잠깐 둘은 말이 없었다.
때절은 커튼을 젖치고 창 밖을 스쳐가는 풍경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부여가는 버스 안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방학이라선지 군대군데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고 안이 휑한게 반도 채우지 않고 출발한 모양이었다.
신문을 뒤적이고, 과자 봉지를 부스럭거리는 아기가 잠깐 칭얼거리고 할 뿐 버스 안은 내내 조용했다.
"인숙아 왜 광자 안있었냐"
"정자나무 아래 살던 광자언니?"
"이. 그 집 둘째 딸. 너보단 한참 나이가 많지?"
"대여섯도 더 넘을걸? 그런데 왜?"
"광자를 봤다는 사람이 있었다. 며칠 전에...."
"그 언니...."
"그려. 얼굴은 이쁜디 정신이 나갔지. 원래 그런 건 아니었다. 시집을 가서 어치게 된 심판인지 이 년만에 친정에를 왔는디 지 정신이 아니었댜.
들리는 말로는 남자가 바람이 나서 광자헌티 손찌검이 심했던 모양이더라. 츰이 와서는 아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친정일가고 와야 어디 기댈 구석이 있으야 말이지. 아버지는 노름꾼에 서모 박대에..."
"....."
"걔 팔자도 참 안된 팔자였지. 즈의 언니야 익산 어디로 가서 그럭저럭 산다더만 걔만 그렇키 눈치먹은 강아지맹키 빌빌거리더니.....정신이 온전해야 어디 남의 집에 가지...
어렸을 때는 두 눈이 땡글땡글 헌게 여간 야무진 애가 아니었는디...."
"어떻더래?"
"기와집 살던 병혁이 있잖여. 걔가 화물을 모는디 늬 형부헌티 가끔 다녀간다. 걔네가 우리 시가쪽으루 어치케 먼 친척쯤 되나벼. 그런디 걔가 전주에 갔다가 작년 가을에 봤단다. 처음엔 모르구 지나쳤는디 나중 생각해 보니 광자더란다. 병혁이네랑은 아래웃집 살며 자랐잖여.
정신이 온전치 않은데 행색인들 온전할까. 어치게 살아는 있더라만 그 말을 듣고 내가 며칠을 짠혔다."
언니는 금새 얼굴이 붉어졌다.
광자언니네 웃언니하고 언니는 동창이었다.
한 마을에서 동기간처럼 자라다 불행해진 동생을 보니 안그래도 마음 여린 언니가 얼마나 뒤척였을지 그 마음자리가 잡혀 나도 언짢아졌다.
"생각해보먼 시절이 그래선가 어째선가. 다들 대처에 나가서 잘 되었다는 말은 없고 들리느니 마음 저리는 소식 뿐이다냐."
"그만한 일은 어느 동네에나 있는 일이지."
"얼래? 너는 명색이 선생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모진 소리를 허냐. 야 생판 남이래두 잘되느냐 말 들으면 좋은디 하마 동향 피붙인디..."
"동향 피붙이는....우리는 언지 그런 살뜰한 인사 한 번 고향서 받아봤어?"
언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려두 그런 게 아니다. 아버지가 여러사람 힘들게 허구 가신 업보가 있으니께 받을 건 받으야지. 그 사람들 원망허먼 안된다."
그리고는 우리 둘 다 말이 없었다.
언니는 무슨 생각이 잠겼는지 가느다란 한숨을 쉬며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고 나도 덩달아 밖을 구경하는 체 했지만 까닭없이 어지러워지는 심사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거짓말처럼 십오년이 흘렀다.
고등학교를 마치지도 못했던 오빠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으니 가라앉을 법도 한 기억이련만 속은 여전히 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