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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돌말사람들

사람 박봉찬 전 14

by 소금눈물 2011. 11. 17.

 

12/25/2003 09:41 pm공개조회수 0 5


박봉찬씨가 한밤에 아버지를 찾아온 것은 한달쯤이나 지나서였을까.

그 전날 새마을 부녀회주최로 온양으로 온천관광을 떠난 터라 마침 엄마도 없었다.
워리가 컹컹 짓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길다란 그림자 하나가 담장에 걸쳐 있었다.

"병술이 있나?"
"누구랴?.....봉찬이 아녀? 들우 와. 안잤네"

며칠 만에 보는 봉찬씨 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방문을 닫는데 불빛이 비춘 댓돌에 백구두 뒤축 하나가 접혀 있었다.

"아그 엄마넌 온옝이 갔나?"
"여편네들이 할 일 읎으문 집이서 씨설이(청소, 혹은 설겆이)나 지대루 헐 것이지 뭔 관강이럴. 촌이서 보는 산이구 들이구가 고개들어 보문 다 관강이지 뭔 베깥이루만 나가는 거시 관강이여? 밥 먹구 배부릉게 다덜.... 부녀히든 머던 다덜 치맛바람 날릴라구 만든 것이지, 이장 마누래 설치구 댕길 띠부터 알어봤어.
즈의 집 안마당이 풀이 수작골 못자리 맹키루 키를 재드만 뭔 새마얼 사업을 온츤이 가서 때 불리먼서나 허야능가?"

가기 며칠 전부터 투닥투닥 오가는 말이 곱잖았던 아버지였다.

담배를 주고받는 모습을 졸린 눈으로 보다가 나는 윗목에 깔아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초저녁부터 몰아치던 잠이, 그러나 찬바람 묻혀 들어온 박봉찬씨를 보고는 거지 반 달아나 버렸다.

"뭔 일여? 자네 집이 응뎅이 붙일 시간두 읎을 사램이?"
"그런 소리 마러. 나 보넌 눈이 다덜 탱자가시 붙인 중언 아능게."
"알긴 아느만?"
"나라구 귀두 읎구 속이두 읎나? 말 좋아 허는 너믜 짜잔헌 눈치럴 속이 담는 승질이 아닝게 그렇지"
"어이구야. 참말루 자네 인품은 부처님이 허리 꾸부릴 그릇이시. 그 인품으루만 그 뜻 피으 봤으먼 돌말 아니라 부여이 인물 났겄다"
"짜꾸 그려싸먼 내가 자네헌티 워치게 말을 혀"

드디어 박봉찬씨 말에 짜증이 묻었다.
아버지는 히히 웃더니 담배를 다시 물었다.

"그려. 도둑괭이 만치루 안식구 읎을 띠 몰래 건너와 허넌 말좀 들어보자"

한순간 박봉찬씨 얼굴에 그늘이 졌다.
말을 끊고 한숨만 푸욱 쉬던 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부여이다 사무소럴 냉 거는 알지?"
"그거이 뇡민신문이두 난 사실 아니라구?"
"짜꾸 그려싸먼 할 말이 읎구!"
"히히.. 알었어 알었어..그려 말 히봐"

"츰이 포부야, 나가 워치케든 평생얼 고향과 나라럴 위해서 노심초사 이은구 헌 결과럴 심적으루나 물적으루나 지대루 한 번 펼쳐보자구 헌 것이지"
"지랄이는 옘병이하구 동무허더라"

짜잔한 남의 말에 마음을 여닫는 이가 아니었던 본디 품성대로인지 아버지 말에는 다른 대꾸없이 아픈 말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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