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명/그녀는 다모폐인

그 해 여름, 윤의 마음...

by 소금눈물 2011. 11. 16.

07/15/2004 10:18 am공개조회수 0 9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서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백석 < 흰 바람벽 있어> 중

그 해 여름은 빗속에 찾아왔다
맨 발의 아픔들이 쉴새 없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종일 울었고
그리운 이름을 아픔으로 던지는 사내가 그 비에 젖고 있었다.
그의 귀는 천리 밖까지 나아가 듣고 싶은 사랑의 말들을 구했고
여자의 말들은...차마 전하지 못하고...
감춰야 할 말들은
천천히 빗물에 떠내려갔다
온 나라는 백년 만에 왔다는 태풍으로 울었고, 그렇게 갈라진 가슴마다 이 사내의 처절한 밤들이 우리의 잠자리를 뒤척이게 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왜 이 사람의 사랑의 방식에 그토록 아파하고 서러워하면서 떠나지도 못하고 지키고 있는 걸까.
왜 세상의 모든 사랑의 이름을 그로 바꾸고, 왜 모든 아픈 인연의 모습을 그의 마지막으로 치환시켰을까..

사랑이라는 말이 있었단다
차마 전하지 못하고, 아니 새삼 혀 끝에 올려 마음을 전하기에는 그 마음이 너무 커서, 부르기도 전에 물기가 배어버리는 이 설운 마음을, 우리가 하늘로부터 받은 적이 있었단다.
글쎄....그런 것이었을까 사랑은..
한 사람을 가슴에 담고 일평생 깊은 잠을 못이룬 이 사람은, 그 무섭고 뜨거운 말을 자신의 것으로 갖지도 않았다.

- 그 자를.....사랑하느냐...

그랬었다.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에게 그 말은, 차마 올리지 못할 불같은 말씀이어서, 하늘의 말을 감히 그 가슴에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하던 그런 사람이어서...아니 아니..말하지 않아도 하나의 물길로, 하나의 꽃으로, 한 그루의 나무로 뻗어 자라고 이윽고는 하나의 마음길로 묶인 이들이라서 그 말이 필요가 없었단다.

잘라내고 밀어내어도 어느새 가슴뼈 아래로 파고 들어온 그 불면의, 불치의, 무형의, 독약같은 "마음"은 그렇게 "사랑"을 넘어섰고...그에게는 그저 "그의 마음"으로 고유명사화시켜버린 것이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왜 윤의 마음이냐고.
나는 달리 말하지 못하겠다.
그의 마음을 다른 무엇으로 말하기에는 내가 가진 모국어가 너무나 가난하다.
아니다.
저잣거리에 넘쳐나는 그 "사랑", 삼 분마다 외쳐대고 이 분 오십 초마다 지워지는 그 "사랑"에 이 사람을 나는 두지 못하겠다.
어떤 이의 사랑은, 차마 가슴에만 남고도 그 사람의 심장을, 가슴을, 일생을, 영혼을 집어삼키고 그렇게 우리에게 ...잊고 살았던...언젠가 하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는 그것을 잠깐 보여주고 무지개처럼 사라져버린다.

이 사람의 마음에 비견될 그 "사랑"을 찾을 재주가 나는 없다.
언젠가는 우리도 가졌었노라고, 언젠가는 우리도 꿈꾼 적이 있노라는 그 "사랑".
우리의 기억 어디쯤에 전설처럼 들은 적은 있으되 정작은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의 흔적기관의 언어.

너는 내 목숨이었다...
함께 너와 함께 숨쉬며. 살고 싶었는데.....
너를 마음에 품은 후로 나는 한번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는 나로 인해 그러지 말거라

... 이제야 ..이제야 깊은 잠을 이루겠어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지상에서의 그의 짧은 유배는 그렇게 끝났다
생각하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말인가.
남은 그녀가, 그 말씀을 가슴에 담고 남은 나날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의 불면의 밤은 이제 끝이 났고, 깊고 긴 잠 속으로 돌아갔으되, 남은 그녀의 생은 이제부터 고통과 피흘림의 나날일 뿐일 것이다.
그녀가 행여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죄책감과 고통으로 아파할까봐 그녀를 위해 풀어주며 안스러워하는 저 절대적인 사랑의 마음은,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녀를 잡아매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죽음으로 자신의 유배를 벗어났으나, 그의 불면이었던 그녀는 이제부터 수형이다.

사랑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새길 사이도 없이, 는개비에 젖어들듯 자라온 마음이었고, 몸이 자라듯 그들의 그 연모도 자연스럽게 자랐다.
그들에게는 언술로서의 확인이 필요없었다.
계획하지 않아도 한치도 어긋나지 않은 몸짓들, 마치 두 발이 서로 연이어 나아가며 그 걸음걸이를 만드는 것처럼 비룡직진세의 사랑이 그들의 삶이었고 확인이 필요없는 감정이었던 것이다.

피흘리는 발을 끌고 신천땅에 끌려온 어린 소녀에게, 비에 젖은 등을 내어주던 아득한 시절로부터
그가 그녀를 위해 울면 그녀는 그의 아픔을 위해 꿀물을 훔쳤고
그녀의 온전한 걸음걸이를 위해 그가 손을 잡아주면, 그녀는 그를 위해 그를 상케하는 주장자를 훔쳐 태웠다. (그를 위해 두번이나 도둑질을 했군..아니다 함정의 편지까지...그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도둑질을 해야했던 그녀의 사랑. 그의 일생을 훔친 것이었군..)

그러면서도 그녀는 늘 그 앞에서 뒷걸음이어야 했다.
누구보다 용감하고 당당했던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만은 그를 바라보기를 저어해야했다.
거리낌없이 손길을 주고받고, 체온을 나누며 오가는 눈길속에 차마 터뜨릴수 없는 정을, 어떤 절절한 하소연보다 더 뜨겁게 주고받던 그들이 정작....상처받는 건, 상대가 주는 넘치는 사랑이 아니라 줄 수 없는, 주기를 절제해야하는 그 마음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대답했다.

너에게 나는 누구이더냐
제가 왜 사는 지 아십니까
그게 포도청 다모의 자리다
너는 나로 인해 산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도 그랬다. 너 없이는 내가 살지 못한다.

감추어야 했던, 아니 드러낼 필요가 없이 무언으로도 충분했던 그들의 사랑은

우포청 조종사관의 발언으로 오히려 확실해진다.
수하에 훌륭한 다모년을 두었다는 비아냥에 그는 수하라고 하고 조종사관은 '종"이겠지 하며 조소한다.
그런데 그녀가 그저 수하이고 종일수만은 없다는 것을 그도, 그녀도, 아니 포청의 누구도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그를 위해서 몸을 사리지 않을 것임을 좌포청의 누구나가 다 아는 일이었고, 그녀가 그의 곁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살 수 없는 몸임을 또 그들 모두가 알았다.

그런....누구였던 것이다.

그는 이제 그녀를 자신의 그 마음에서 놓아주려 한다.
그녀를 위해서, 자신이 없는 세상에서 '속절없는 회한으로 그녀가 고통스러워하지 않기를, 그녀의 삶이 더 이상 신산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그런 떠남이 다른 무엇보다 그녀를 견딜수 없는 고통의 나날로 만들어버릴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녀를 위로해주려 한다.
몸이 제멋대로 뒤틀리고 경련이 숨통을 막는 그 절명의 순간에서!!!!
너를 일생동안 사랑했다.
혹은, 나를 사랑했느냐..
가 아니고~!!

나로 인해 너는 괴로워하지 말라는 당부인 것이다..
그게..그의...."마음'이었던 것이다.
행여 그 순간 그가 힘겹게 입을 열어, 너를 사랑했다거니 혹은 너로 인해 행복했었노라니,.그런 '사랑'의 말들을 고백했다면 내 연모는 아마도 삼분의 일은 날아갔을 것이다.
짐승의 헐떡임으로 숨이 넘어가면서, 그의 마지막 시야에 잡히는 것은 그녀의 눈물이었고,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절규하는 그녀의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그럴 마음조차 애초에 없다....

너는 나로 인해 그러지 말기를...
이제야 깊은 잠을 자노라는 그의 마지막 고백은 그 모든 짐을 그녀에게 넘기고 떠날 수 밖에 없는 미안함이다. 자신은 비로소 이 잔인한 형벌에서 놓여나지만, 이제 그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을 어쩌지 못하는 그 아픔...마지막 순간에조차 그는...
그게...감히 우리가 짐작 못할 "윤의 마음"..이었다.



-나는 너에게 무엇이더냐....

차마 정인의 그 부름에 열지 못했던 그 말을, 이제 그녀가 눈물로 답하며 걸어가는 나날이 있을 뿐이다.
다모였던 그녀의 종사관이었고...부모를 잃은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었으며, 대신 목숨을 바칠 연인이었고 그리고...사는 이유였고 숨결이었던 그 사람...
그녀의 자리를 만들 수 없는 한을 속으로 삼키며, 그 마음을 보여줄 수 없는 고통을 난희에 대한 축복으로 대신했던 그 빗속 수련장의 대답을.. 이제 그녀가 삶으로 보여주며 걸어가야 할 고난만 남았을 뿐이었다..
자기를 죽임으로 그녀의 목숨을 지켰으나, 정작 그녀는 살아있음으로 그의 죽음을 날마다 견뎌내는 형벌을 안고...

잔인하도다 사랑이여...


아..
거기서부터 우리의 불면과 아픔도 시작이다

'그룹명 > 그녀는 다모폐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한 사랑  (0) 2011.11.16
그 남자의 사랑 방식 -펌..<나무>님  (0) 2011.11.16
전설  (0) 2011.11.16
그 밤  (0) 2011.11.16
막막한 밤  (0) 201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