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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함께 가는 세상

홍대총학, 이기적인 연대의식 이야기.

by 소금눈물 2011. 11. 15.

01/12/2011 06:15 am공개조회수 0 4

1.

저 역시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약자' 쪽에 가깝다고 많이 느끼면서 살지만, 근로시장에서는 '기득권자'라 불려도 별로 할 말 없는 정도의 지위에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저 역시 상대적인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지요.
저보다 강자인 자에겐 저의 권리를보장받기 위해 읍소하고 불평하고 투쟁하면서, 저보다 약자에겐 대체적으로 무관심하거나 나아가 제 것을 지키려는 방어태세로, 그렇게 삽니다.

저보다 가진 자가 저 같은 사람 생각 않고 자신들만의 이전투구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며 성토합니다.
가진 사람들이 같이 잘 살 생각은 안 하고 저렇게 지들 더 가지려고만 하니 세상이 이모양 이꼴이라고, 희망이 없다고 분개합니다.

그리고 그성토와 분개에서 "다 같이 잘 살아야 할 우리"는 거의 대부분 딱 "나" 까지만입니다.

정규직인 저는, 저의 임금동결에 분개하면서 "회사 너무한다, 이래서 살겠느냐"고 성토하지만, 파견근로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의 임금이 얼마인지, 그 대우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삽니다.
그 아주머니들에게 회사가 얼마나 너무하는지, 그래서 살 수 있겠는지, 전혀 인식하지 않고 삽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도 아마 나에 대해서 똑같은 인식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그들도 자신들보다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똑같이 성토하고 딱 자신까지만 포함하는 기준으로 "다 같이 잘 살자"고 외치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나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지 않을까.
정몽준, 나경원, 오세훈, 그리고 강남 땅부자들에게 "나"는, 나에게 있어서의 파견근로 청소용역 아주머니와 같은 것이 아닐까.


2.

전에 서울대 출신 친구와 비슷한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서울대 교정에 캠프를 차린 비정규직 연대파업 노조원들에게 협조했던 당시 서울대 총학에 대해서.
그 친구는 홍대 총학생회장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고 강경한 어조로 총학을 비난하더군요.
"연대의식? 족구하라 그래. 대체 왜 서울대생이 비정규직이랑 연대의식을 느껴야 하는 건데? 서울대 졸업하고 비정규직 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 거 같애? 평생 내가 경험할 가능성도 없는 영역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평생 경험할 가능성도 없는 일에 대해서, 내가 왜 연대의식을 느껴야 하냐? 전문대 교정 빌려서 하라 그래." 라구요.

어떤 정규직도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결국 근로시장의 문제고 근로자의 문제다. 서울대생도 대부분 근로자가 된다, 연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라는 제 얘기에,
"서울대생의 대부분은 자신이 궁극적으로 근로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취업을 하더라도 결국엔 경영진이 될 것을 목표로 하고, 실제 대부분이 그렇다, 서울대생들이 친경영적 마인드를 가지는 건 당연하다"고 얘기하더군요.
취업한 서울대생이 경영자가 되기까지, 커리어의 대부분을 결국 근로자로 지내게 된다....는 얘기는 그땐 하지 못했군요.

"서울대생의 사회에 대한 책무는 약자들과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서 기득권이 되어서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거다" 라고도 하더군요.
그들에 대해서 연대의식조차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을까요.
아니, 과연 그가 생각하는 '기득권'이 되는 시점은 언제부터일까요?
중앙부처 국장 쯤 되면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을까요?
아니, 아직은 위의 눈치를 봐야되는 입장이니 실무를 총괄하는 차관보 쯤 되어야?
아니, 아직 정책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니 장관 쯤 되어야 할까요?
그때도 정권의 색깔이라는 게 있는데 혼자 튈 순 없으니 대통령은 되어야 할 수 있을까요?


3.

언제나 남 생각만 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옳지 않은 일에는 함께 분개해야 합니다.
함께 분개하진 못한다면, 그 분개에 지지라도 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지지할 입장이 못된다면, 최소한 수인이라도 해야 합니다.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더라도, 옳지 않은 행위에 대한 제재가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더 발전적으로 오래 생존합니다.
그러한공동체의 발전적인 존속은 곧 그 안에 속한 "나"의 발전적 존속이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질서"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최소한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연대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설사 그 대상은 직접적으로 나와 연대되어 있지 않더라도요.

파견근로자 아주머니들이 불쌍해서, "약자"라서, 지지하고 수인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 측의 행동이 명백히 "옳지 못하고" 그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한 항거이기 때문에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그 "옳지 못함"의 피해자가 내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버리는 질서를 형성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옳지 못함'에 대한 항거에 연대하는 것, 사실은 그것이 가장 "이기적"인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방어기제일지도 모릅니다.


4.

요즘 애들 문제다,,, 정말 오래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지겨운 드립이죠.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기성세대다" 드립 역시 딱요즘애들 드립만큼의 역사를 가졌을 겁니다.

맞는 얘깁니다.
기성세대들이 잘못 행동해서, 혹은 침묵해서, 지금의 젊은이들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사는 각박하고 살벌한, 주위 한 번 돌아볼 여유, 과연 어떤 게 정말 나에게 이익일까, 어떤 게 "옳은" 일일까를 생각할 여유마저 없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세상을 침묵하며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이 살 한층 더 각박하고, 한층 더 살벌한 그런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가되어 있을 겁니다.


** 출처
http://mlbpark.donga.com/bbs/view.php?bbs=mpark_bbs_bullpen09&idx=1008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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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도 눈여겨 읽고 공감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원글이 너무 따뜻하고 고마워서 되풀이 읽는다.

그런데 어쩌자고 세상은 자꾸 이 지경으로만 발전할까.
88만원세대의 고통과 좌절감을 꼰대 너희들이 아느냐고 소리친 후배에게, 홍대 선배라는 이가 88만원받는 이를 지켜주지 않는 세대는 150만원 받는 이도, 200,300만원을 받는 이도 지켜주지 않더라는 따뜻한 질타가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

내가 출퇴근하는 지하철 역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볼 때마다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인사를 한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파트에서 관리비 줄이자고 경비 인력 줄인다는 말에 화를 내고 반대하는 것, 그들에게 내 동료에게 하듯 인사를 하는 것.. 내가 할 줄 아는 관심은 고작 그런 것 뿐이지만 사회적인 포지션 역시 그분들과 나 사이에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걸 안다.

이 사회 안에서 같은 사회구성원으로, 같은 공동체원으로 같이 존중받고 인정받으며 사는 것은 어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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