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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양귀비
소금눈물
2011. 11. 11. 16:23
사랑하는 당신..
이 부질없는 호명이...당신께 닿을까요.
당신....내 부름을, 이 아프고 외로운 부름을...듣고 계신가요.
당신과 나 사이의 이 막막한 강들이, 어느 사이에 일시에 치워져 당신을 바라볼 수 있는 그날이 마침내 왔을때 그동안 보냈던 내 부름의 기억들을, 당신 그때 찬찬히 하나씩 떠올려주며 저를 맞아주실까요.
그날이 올까요....
그때는 그렇지 못했지요.
막연하게 한 사람을 사모한다는 것과, 실체를 가진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것이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책임을 요구받는지를 몰랐습니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그때 저는 고작 스물 서넛의 여자였고, 당신이 보셨던 것보다 한참 어리고 겁도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함께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가까이 있던 학교 캠퍼스를 산책하며 데이트를 하고...당신의 손에 내 손을 깍지 낀채로, 손을 통해 전해오는 서로의 따뜻한 갈망을 행복해하고...
고작해야 그것이 전부인 나이였고, 그런 아이였습니다.
당신의 공부, 아직 많이 남은 과정, 갑자기 부담이 되어버린, 나이든 남자의 현실, 그리고...아직도 당신의 공식적인 그녀.
갑자기 당신의 배경이 선연해졌고, 제가 들어설 길이 아니었음을 바로 그때 느껴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모는 해도 그런 고민까지 함께하기는 캄캄한 먼 날의 일이었으니까요.
왜....그러셨냐고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 사랑이 무엇이었느냐고도 묻지 않겠습니다.
제게 어느날 당신이 물들어오신 것처럼, 어느날 저도 그렇게 당신의 가슴 속에 성큼 들어가버린 것이겠지요.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내습은 혼란스럽고 불안한 것이었다가 당신의 가슴에도 어느새 상처가 되고 오랜동안 당신과 함께 시간을 나누어온 그녀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어쩔 수 없게 부담으로 느끼게 되었겠지요.
텅 빈 한쪽가슴이, 이제 너로 인해 채워지게 되었다...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때, 당신의 얼굴은..... 설렌 고백이 아니라 슬픈 토로같은 것이었습니다.
등을 보이고 누워있던 저를 앞으로 돌이켜 끌어안으며 당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앞으로.....절대로....나한테서 등을 돌리지 마라..."
숨막히게 저를 끌어안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당신에게는, 그 순간의 제 혼란과 두려움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배신감이었을까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요.
아니, 막연한 어떤 그리움의 끝이 이런 실체와 혼란까지를 함께 끌어온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겠지요.
남자의 첫몸을 안는다는 두려움,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될까봐, 혹은 너무 사랑할게 될까봐 느끼는 두려움...그리고 나를 잃게 될까봐 더 큰 두려움...
당신은 그때 두렵지 않던가요.
제 몸이, 제 마음이 다만 설레임이고 기쁨뿐이었던가요....
흉터가 길게 지나간 당신의 가슴팍에, 제 손을 끌어다 붙이며 당신...가만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머리칼을 쓰다듬던 손을 내려, 얼굴을 더듬을때, 당신의 손 아래서 스치는 내 눈과, 코와 볼의 언덕들이 작은 풀꽃처럼 피어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의 손길이 어디에 닿아 제가 몸을 떨었던가요.
제 손이 당신의 어디를 끌어안아 당신이 숨막혀했던가요.
신전의 아름다운 회랑을 걷는 것처럼, 당신의 처음 시작은 그렇게 조심스럽고 부드러웠고...불안하고 서툰 제 손길이 닿는대로 당신의 신음은 힘들고 떨리고 있었습니다.
주영아.....주영아...
우리가 비로소 하나의 물결로, 하나의 가지로 얽혔을때야 당신도 이 사랑이 그토록 무겁고 힘들것임을...그때서야 알았지요.
제가 두렵듯이, 당신의 두려움도 컸음을...당신이 놓아야 하고 당신이 시작해야 하는 것들로 인해 당신도 무섭고 두려웠음을....떨리는 목소리로 자꾸 제 이름을 되뇌일때...그때서야 저도 알았습니다.
거칠고 뜨거운 호흡이, 슬픔의 색깔로 변해 가라앉을 때에야...당신의 가슴 속에서 저도 당신에게 그런 어려운 또 하나의 두려움이었음을....그때서야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