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베르제르의 술집>- 에두아르 마네
마네는 인상파를 연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만 본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마네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풀밭위의 식사>나 <올랭피아>는 많이들 보셨을 거예요. 내놓은 작품마다 평자들 사이에서 파란을 일으켰지요. 많은 젊은 화가들이 그를 좋아했고 인상파모임에 그를 끼워넣고 싶어했지만 그는 거부합니다.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그림도 그렇게 달라지고 있는 것을 인상파를 연 그 자신조차 몰랐던 가 봐요. 아이러니합니다. 자신의 그림을 어떤 식으로 규정짓고 싶어하는 이들을 탐탁치 않았는지도 모르지요.
오늘 우리는 술집에 와 있습니다. 녹색의 천사라고 불리는 독주 압생트도 보이고 와인이나 여러 종류의 술들도 보이지요? 흰 레이스로 목덜미를 두른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우리 앞에 마주하고 있습니다. 검은 색이 이처럼 화려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또 느낍니다. 아가씨의 뒤로 벽면을 다 차지한 커다란 거울이 우리가 앉은 쪽을 비춥니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있는 이 술집은 무척 화려하고 붐비는 군요. 지금 빠리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나 은근한 뒷소문들이 저 탁자들마다 넘실거리겠지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붉은 뺨의 아가씨는 저렇게 아름답고 싱싱한 청춘인데도 그녀는 행복해보이지 않습니다. 이 번잡한 술집에서 자신을 힐끔거리는 신사들의 눈초리가 그녀의 목선과 건강한 흰 팔뚝위에 쏟아지는데 이런 것들과는 자신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녀는 무심하고 피로해보입니다. 술에 취한 신사들의 짖꿎은 농담과 노골적으로 건네는 성희롱들 사이에서 고립된 섬처럼 느껴집니다.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이처럼 실감나는 표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은 주점과 극장, 레스토랑이 결합된 형태로 운영되었고 모델이었던 쉬종양은 이곳의 여급이었다고 합니다. 폴리베르제르의 여급은 손님들에게 돈을 받고 은밀한 시간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뺨을 가진 아가씨에게 이곳은 결코 유쾌하거나 즐거운 장소가 될 수 없었겠지요.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이상한 구도로 거울에 비친 남자와 쉬종양의 뒷모습이 함께 비치지만 관람자들의 눈에는 그런 어색한 불일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화려하고 떠들썩한 술집에서 어딘지 슬픔이 담긴 모습으로 오도카니 서서 표정없는 얼굴로 멍하니 서 있는 젊은 여자.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지만 그녀의 눈망울에 그 남자의 눈빛이 닿지 않는 것 같네요.
그녀 앞의 저 많은 술병들도 결코 그녀를 위로해주지 못하겠지요. 낭자한 음악소리도 그녀의 귓가에 닿지 않습니다. 앞에 놓인 물컵에는 싱싱한 꽃이 꽂혀있고 크리스탈그릇위의 과일도 그녀의 젊음처럼 빛나지만 이것들은 모두 그녀의 것이 아닙니다.
저 쓸쓸하고 슬픈 눈매가 잊혀지지 않아요.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서 마네는 그녀의 고립을 이했을까요? 글쎄요... 내가 보기엔 누가 그녀를 어찌 보던, 이해를 하던 말던 그건 아무 상관없이 냉담하게 돌아섰을 것만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