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2
호봉의 큰 외숙모집에 동네여자들이 모여 아래윗집이 떠들썩하게 기름냄새를 풍기는 일이 잦아졌다. 여자들은 동네 고샅길에서 서울여자와 마주치면 인사는커녕, 쌩 소리가 나게 외면했다. 철없는 조무래기들이 그 여자가 주는 것을 물고 다니다 걸리면 뉘 집 엄마한테든 너나없이 혼찌검이 났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우리에게는 안 먹혔다. 동네 떠도는 말이 어찌되든 우리들에겐 새색시는 정말 다정한 사람이었다. 임주사네 집 앞 넓은 공터에서 아이들이 사방치기를 하느라 떠들썩하면, 대문 앞에 나와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며 웃기도 했다. 놀이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우리들 볼따귀는 청포도사탕으로 터질 듯이 부풀었다. 덕분에 마을에서 제일 신난 것은 호봉이었다.
“자꾸 놀리면 너 우리 작은 외숙모한테 일러서 쪼꼬레 안 주게 할 거여.”
사고뭉치 한량 아버지 때문에 기가 죽어지냈던 호봉이는 자못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호봉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코찔찔이 호봉의 유일한 친구이던 내 위치까지 흔들리게 되었다. 혹시라도 호봉의 심기를 건드리면 마을에서 제일 넓은 놀이마당을 포기해야 했다. 가끔이나마 손에 쥐어지던 군입정거리도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가끔 투닥거리고 부아가 나서 삐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의리가 있는 호봉이는 나를 제일 친한 친구로 붙여주었다.
겨울방학 때였다. 장판이 누렇게 눌어붙은 아랫목에 배를 깔고, 학교에서 받아온 새 학기 국어책을 읽던 호봉이 말했다.
“우리 작은외숙모네는 동화책도 있다.”
“동화책도 있어?”
“그러엄! 되게 많다. 우리 작은외숙모네는 쪼꼬레도 많고 알사탕도 많고 동화책도 되게되게 많어.”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새농민이나 방학책도 아니고 동화책이라니.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되게되게 많다니. 나는 조바심이 났다.
“호봉아 너는 작은외숙모네 안 놀러가냐? 너 엄청 이뻐한대며?”
호봉이 머뭇거렸다.
“흥. 그짓말이었구나?”
입을 비죽거리자 호봉이 발끈했다.
“그짓말 아녀! 진짜 많어!”
“그럼 너 지금 갈 수 있어?”
“갈 수 있어. 언제든지 놀러오라고 했응게 지금 진짜 갈 수 있어!”
호봉이 넘어갔다.
잔뜩 으스대며 내 손을 잡아끌고 큰마당 집으로 갔다. 호기롭게 끌고 간 호봉이 성큼 대문을 넘지 못하고 담장 너머를 기웃대며 망설였다. 내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던 호봉이
“너 외삼촌네 간 거 니네 엄마한테 말하면 안 된다?”
“알었어.”
동화책을 보리라는 욕심으로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몇 번을 다짐을 받고 드디어 호봉이 큰 대문을 열었다. 마을에서 제일 좋은 집,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그 높다란 대문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넘어보았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슬리퍼를 신은 작은 외숙모가 나왔다. 종아리까지 닿는 긴 원피스를 입고 흰 털을 목덜미에 두른 자주색 조끼를 입은 작은 외숙모는 정말 예뻤다. 교회 가는 날도 아닌데 집안에서도 저런 옷을 입고 있다니. 부른 배를 안고 있는데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나는 얼이 빠져서 서울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조카님이 놀러왔구나.”
서울여자가 환하게 웃었다.
바깥마당만큼 넓은 안마당이 나왔다. 그 마당에는 흙이 없고 잔디가 깔려 있었다. 넓은 잔디밭 사이로 납작한 넓은 돌이 징검다리로 놓였다. 마당 한 가운데 작은 연못 둘레로 이리저리 휘어진 향나무 분재들과 꽃나무들이 서 있었다. 댓돌 아래 낙숫물이 떨어지는 자리에는 흰 자갈이 조르르 깔렸다. 마루에는 희(囍)자가 새겨진 미닫이 유리창이 달려 있었다. 마당 한쪽에는 팔걸이가 있는 하얀 나무 의자도 있었다.
농기구가 걸린 벽이나 창고가 없는 그런 집은 처음 보았다. 넋을 잃고 있는 나를 호봉이 잡아 끌었다. 호봉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복도처럼 긴 마루가 신기했다. 담장에 심은 오래된 백일홍 나뭇가지가 유리창에 어렸다.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장판이 아니라 다다미가 깔려 있었고 방 한 중간에는 보글보글 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가 얹힌 난로가 있었다. 교장실에서 본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소파도 방 한 가운데 있었다. 우리집에는 국회의원 이름이 커다랗게 씌어진 연력이 붙어있었는데 그 집 벽에는 서양그림이 있었다.
시조카가 친구를 데리고 왔다고 작은 외숙모가 간식을 내왔다. 유리접시에 담긴 것은 보슬보슬 노란가루가 뿌려진 빵이었다. 몇 번 먹어보았는지 호봉이 카스테라라고 했다. 부서질까 조심조심 입에 넣는 순간,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그 맛은 황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엄마가 쪄주던 개떡이나 장날에 사 주던 찐빵과는 비교할 것이 아니었다. 내 눈도 호봉이처럼 반달눈이 되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카스테라 먹은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몸살이 났지만 그랬다가는 다시는 이 맛을 못 볼 터이다. 그것이 견딜 수 없이 아쉬웠다.
호봉의 자랑만큼 많은 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그 집에는 책이 많았다. 동화책은 물론 페이지가 두꺼운 그림책도 여러 권 있었다. 작은 외숙모가 나긋나긋 동화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호봉이는 불경스럽게도 자불자불 졸았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사락사락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호봉이 작은외숙모를 열렬하게 사모하게 되었다. 호봉이네 외삼촌을 나는 천만 번 이해했다. 저런 여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우물가에서 떠든 동네 아줌마들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손톱에 때도 끼지 않고 큰 소리로 아이들을 꾸짖지도 않으며 날마다 카스테라만 먹고 사는 이런 여자가 어찌 구미호라는 말이냐.
읽던 동화책을 선물로 받았다. 동화책을 받아안고 오면서 눈물이 나올만큼 행복했다.
서울 사람들은 밥 대신 카스테라를 먹고 선물도 주고 집 안에서도 예쁜 옷을 입고 사는 걸까. 왜 우리 엄마는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까. 며칠 동안 나는 엄마한테 짜증을 냈다.
“왜 즤 아부지도 않던 짓을 혀? 십상 좋은 몸뻬를 왜 벗으라구 지랄이여.”
등짝을 맞고서야 울음이 그쳤다.
카스테라의 유혹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 대문을 다시 넘을 용기는 없었다. 그 때는 종아리 정도가 아니라 참말 내 다리가 온전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겨울이 지나고 담장 밖으로 흰 배롱나무 가지가 뻗은 그 집을 지나갈 때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머플러를 쓴 젊은 엄마가 그림자가 산수유 노란 꽃가지 사이로 보이고 아기를 어르는 젊은 남자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했다. 마을길을 오가는 임주사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마을 여인들은 맥없이 한숨을 쉬었다. 할아버지의 등에 업혀 아기가 나들이를 나오면 우물가에서 채소를 씻던 여인들은 삽시간에 흩어졌다. 서울여자가 마을로 들어온 뒤 두문불출이다시피 하던 큰 외숙모는 아기가 태어나고 난 뒤로는 교회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첩며느리와 사는 아들 꼴이 보기 싫다고 집을 지어 나간 임주사가 큰 마당집 대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여러 번 보았다. 임주사는 벙글 웃음이 벌어진 입가를 감추지도 않았다.
“그러니께 늙으나 젊으나 사내꼭지들은 애초이 믿을 것이 읎는 겨. 구신같은 년헌티 홀려서 집안이 다 요절나게 생겼어두 몰라. 관짝이 들어가기 전이는 도통 철날 줄 모르는 인종들잉게. 넘 것이나 내 것이나 달블 거 뭐 있어? ”
호봉이 아버지와 막걸리를 걸치다 늦게 들어온 아버지가 공연히 날벼락을 맞았다. 조리돌림을 해서 내쫓아야 한다고 성화를 부리는 엄마에게, 그것도 인연이고 아기까지 태어났으니 살아야지 어쩌겠느냐고 편을 들어 준 뒤로 그 집 얘기가 나오면 아버지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작은외숙모의 호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금쪽같이 귀한 아들 수영이를 낳고 뒤늦게 시부모의 사랑을 받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주사 내외가 친척 결혼식에 다녀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바로 눈앞에 시앗을 들이고 소박을 놓아버린 남편 대신, 그래도 자신을 도닥이며 지켜주었던 시부모를 잃은 큰 외숙모는 애가 끊어지는 통곡으로 마을 여인들을 울렸다. 그리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외삼촌이 병에 걸려버렸다. 암이라고 했다. 평생 아버지의 재산을 녹여내는 재주 밖에 없었던 호봉의 외삼촌은 서울로 어디로 좋다하는 병원, 용하다는 약은 다 써보며 돌아다녔지만 시나브로 사위어가는 생명은 어쩌지 못했다. 수영이 마을에 막 생긴 유치원에 들어가던 해 봄, 호봉의 외삼촌은 세상을 떠나버렸다. 인산이 치러지던 날, 상청에는 큰외숙모가 어린 수영이를 세우고 서 있었다. 그때까지 마을 여자들에게 택호도 얻지 못하고 수영이엄마로도 불리지도 못하고 그저 ‘서울여자’로 불리던 작은외숙모는 보이지 않았다. 며칠째 정신을 놓고 누워있다고 했다.